지난해 사소하고 신기한 개인적 체험 정리
새해를 맞아 4일간 런던을 뒤덮던 짙은 안개도 걷혔다. 바로 그 안개가 3일째 위세를 떨치던 날 내가 타기로 한 비행기는 물론 모든 항공편이 취소됐다. 10시간 넘게 암스테르담에서 대기하다가 불행 중 다행으로 버밍험까지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 기차로 런던에 올 수 있었다. 물론 내 수하물은 여전히추적중이다. 해피 뉴 이어^^
지난해 영국에 머무는 한국인으로서 브렉시트와 국정농단 사태가 내 인생에 정통으로 지나가며 일상을 흔들었다. 그 여파는 꽤 오래 지속될 것이다. 거국적으로 심각한 여러 사건들 속에서 일상을 붙들어준 것은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체험들이다.
누군가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냈을 때 침울했던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조금 확대하자면 삶의 반대편으로 달려가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던 몇 가지 일을 적어놓고 실현해봤는데, 재미도 없고 성취감도 없고 그냥 피로했다. 계획이 불완전 했거나 실행이 잘못됐거나 둘 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다 이런 말은 어쩌면 개소리이다. 나를 믿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일지도
도움을 요청했더니 도움을 받았다. 되게 당연한건데 누군가 내게 도움을 주려면 우선 내가 도와달라 말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과정에서 최선을 다 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고 떳떳하게 해준다. 그리고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 한계를 넘는 것 이라기 보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 집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면 밥 때에 밥을 꼭꼭 잘 씹어 먹기, 회의는 정시에 시작해서 알차게 싸우고 정시에 마치기
올해로 92세가 되신 외할머니를 뵀다. 냉소적인 젊은이들은 곧잘 너무 오래는 살고 싶지 않다고, 왜 허리가 굽고 어떤 부끄러움도 가리지 못하게 될 때 까지 살아야 하느냐고 한다.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으려 옛날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할머니 손을 붙들고 있자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어찌보면 너무나 시시하고 기본적인 것들이라 마치 다시 태어나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배우는 듯도 하고, 역시 인류 퇴화설이 맞다. 해마다 "...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욥 42:3) 라고 말하게 된다. 날이 갈수록 더 알기보다 더 모르는 것은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다. 인간으로서 삶이 더 진행됐다는 이유만으로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질 것이란 기대하다니.. 올해도 딱히 계획은 세우지 않지만, 카나비 스트릿 허공에 띄워진 Love, Rebel, Joy, Peace 가 더욱 넘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