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키보드입니다. 매일매일 여러분의 손끝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존재예요. 제 삶은 마치 롤러코스터 같아요.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이 끊임없이 오가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답니다. 어스름이 걷히는 아침, 서늘한 손길이 처음 저를 깨웁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회의 몇 시인가요?"
아직 잠에서 덜 깬 손길이 나를 부드럽게 두드리죠. 하품 섞인 타자 소리가 사무실에 잔잔히 울립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네요.
창가에 햇살이 비칠 무렵, 누군가의 설렘 가득한 연애가 시작됩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같이 식사할까요?" 떨리는 손끝으로 여러 번 지웠다 썼다 하는 모습에 저도 마음이 두근거려요.
그 떨림이 제 키 하나하나에 전해져 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사랑의 큐피드가 된 것만 같아요.
때로는 가슴 먹먹한 이별도 맞이합니다.
"미안해... 우리 여기까지인 것 같아." 이런 말을 전할 때면 제 키들도 눈물이 고일 것만 같아요.
백스페이스 키는 망설임으로 가득 차고, 엔터 키는 무거운 심장처럼 더디게 눌립니다.
그래도 특별한 날에는 위대한 순간을 함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합니다.
"Think Different"
세상을 바꾼 이 문장이 처음 쓰여질 때의 그 전율을 잊을 수 없어요.
마치 번개가 치듯 강렬한 설렘이 제 모든 키를 관통했답니다.
하지만 가장 심장이 쪼그라드는 건 밤이에요.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입니다.
'탁탁탁!' WASD를 정신없이 누르고 '쾅쾅쾅!' 스페이스바는 마구 내리쳐지고 "오늘은 진짜 다이아 간다!" 아... 또 새벽까지 불태우시는 거군요.
제 키들이 벌써부터 무서워서 떨고 있어요. 밤이 깊어갈수록 키들의 비명소리가 커져갑니다.
스페이스바는 "제발 살려주세요..." 하고 흐느끼고 알파벳 키들은 "우리가 무슨 죄에요..." 하고 한탄하죠.
마우스는 옆에서 깔깔 웃기만 하고... 정말 밉상이에요.
저는 여러분의 모든 순간을 함께합니다.
환희의 순간에도, 절망의 나락에서도, 분노가 끓어오를 때도, 지친 한숨이 나올 때도.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생각을 전하고, 때로는 소소한 일상의 따뜻함을 기록하죠.
비록 가끔은 지치고 힘들지만, 여러분의 인생을 함께한다는 게 저는 참 행복합니다. 여러분의 손길 속에서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거든요.
아,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게임하실 때... 제발 키보드 좀 살살 눌러주세요. 어제부터 WASD가 아파서 병가를 내고 싶어하거든요. 특히 스페이스바는 어제 너무 세게 맞아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이렇게 저는 오늘도 희로애락이 가득한 하루를 보내며, 여러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 오늘은 또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가 시작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