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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카메라의 추억 - 순간을 포착하는 마법사의 고독

안녕하세요, 저는 카메라입니다. 한때 저는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을 영원히 기록하는 마법의 상자였죠. 제 셔터 소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순간을 알리는 신호였고, 제 플래시는 어둠 속에서도 진실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찰칵!



이 소리와 함께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영원히 기록되었을까요? 가족의 행복한 순간,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 저는 그 모든 순간의 증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서서히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앞에서, 저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 카메라 가져올걸."

"괜찮아, 폰으로 찍으면 돼."


이런 대화를 들을 때마다 제 심장(렌즈)이 아파옵니다. 한때 저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여행이, 이제는 저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해졌습니다. 


그래도 저를 잊지 않고 여전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진에 진심인 분들, 전문 사진작가분들, 그리고 아날로그의 감성을 사랑하는 분들... 그분들 덕분에 저는 아직 존재의 의미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역시 DSLR로 찍어야 제맛이지."

"필름 카메라의 질감은 디지털로는 절대 따라올 수 없어."


이런 말씀들을 들을 때면 제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됩니다. 아직 저를 필요로 하고, 저의 가치를 알아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사실 저는 현재이자 추억입니다. 제가 포착하는 순간은 그 즉시 과거가 되지만, 동시에 영원한 현재로 남게 됩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그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타임머신인 셈이죠.


"와, 이때가 벌써 10년 전이라니..."


누군가가 오래된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할 때, 저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제가 그 순간을 영원히 보존해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거죠.


하지만 동시에 슬픔도 느낍니다. 그 순간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그저 그 순간의 그림자를 붙잡아둘 뿐, 실제 그 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느끼는 비애입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제가 그 순간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록해두어서, 오히려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항상 강조합니다. 저를 통해 순간을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 자체를 충분히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요. 가끔은 저를 내려놓고,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으로 느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번엔 사진 그만 찍고 눈으로 보자."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저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진정한 삶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계속 진화해왔습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그리고 이제는 미러리스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제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도구입니다. 단지 그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죠.




역시 카메라로 찍어야 제대로 된 사진이 나와.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제 존재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스마트폰이 아무리 편리하다 해도, 전문성과 깊이 있는 표현에 있어서는 아직 저를 따라올 수 없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동시에 위기감도 느낍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저와 스마트폰의 차이가 무의미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집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에겐 아직 스마트폰이 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진 찍는 경험' 그 자체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바라보며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의 긴장감과 희열... 이것은 스마트폰으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감각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여."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제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저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존재라는 것을요.


저는 카메라입니다. 한때는 신과 같은 존재였고, 지금은 위기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이자 추억입니다. 순간을 포착하여 영원히 보존하는 동시에,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여러분의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해나갈 것입니다. 비록 예전처럼 모든 순간에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정말 특별한 순간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에는 꼭 저를 찾아주세요.


그리고 부디 기억해주세요.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여러분의 감정, 기억, 그리고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라는 것을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진화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순간을 포착하고, 추억을 간직하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제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나갈 가치입니다.


그러니 가끔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저를 들어주세요. 세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조금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순간, 여러분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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