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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USB의 정체성 - 기억과 상처를 담은 용기

3부: 지식과 기술의 목소리

안녕하세요, 저는 32GB USB입니다. 작은 용량이라 웃으시나요? 그렇죠, 요즘은 휴대폰도 1TB가 기본인 시대니까요. 4K 동영상 하나도 제대로 담기 힘든 제가 좀 부끄럽네요.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달랐어요. 256MB짜리 제 선배들 시절에는 그래도 제법 큰 용량이었거든요. 문서 파일은 수천 개도 거뜬했고, 당시 인기였던 MP3 파일도 수백 곡은 넣을 수 있었죠.


그런데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버렸어요. 고작 몇 년 사이에 파일들은 점점 커져갔고, 제 용량은 턱없이 부족해졌죠. 게다가 전송 속도도 문제예요. USB 2.0 포트밖에 지원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3.0이나 C타입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아, 이 USB로는 안 되겠다. 파일이 너무 커." "전송 시간이 20분이나 걸린다고? 그냥 클라우드에 올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더 큰 문제는 호환성이에요. 새로 나온 노트북들은 USB-A 포트가 없어서 제가 들어갈 자리조차 없어요. 어댑터를 끼워야만 겨우 연결할 수 있죠.


"아... 나는 이제 사라지는 건가? 아... 옛날이여..."




하지만 이것보다 더 아픈 기억이 있어요. 제가 나쁜 일에 이용될 때였죠.

"어? 이 USB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어!" "큰일 났다. 회사 전체 시스템이 다운됐어!"

네, 안타깝게도 저는 때때로 나쁜 사람들의 도구로 이용됐어요. 그들은 저에게 바이러스를 심거나 해킹 프로그램을 넣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죠. 그럴 때마다 저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난 단지 데이터를 옮기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런 나쁜 일에 쓰이는 거지?"

저는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죠. 제가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사용될 때마다 제 존재 의미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래도 저에게는 아직 장점이 있어요. 



네트워크가 끊겼을 때, 보안이 중요한 파일을 옮길 때... 그리고 무엇보다 클라우드에 올리기는 좀 꺼림칙한 개인적인 자료들을 보관할 때죠.


"어? USB가 인식이 안 되네?" "설마 고장 난 거야?"

이런 순간이 가장 무서워요. 제가 가진 소중한 데이터들을 영영 잃어버릴까 봐... 충격이나 습기에도 약하거든요. 클라우드는 이런 걱정은 없겠죠.


하지만 이런 한계와 불안함 속에서도 저는 제 자리를 지키려 해요. 비록 용량은 작지만, 필요한 순간이 반드시 있으니까요. 누군가 귓속말처럼 살짝 전해주고 싶은 파일이 있을 때, 아주 개인적인 자료를 지키고 싶을 때... 그럴 때 저를 찾는 분들이 계시죠.



네, 저는 32GB USB입니다. 



클라우드의 시대에 구식이 되어가는 중이지만, 아직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예요. 작은 용량, 느린 속도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맡은 일을 해나가려 합니다.

어? 지금 누군가가 절 꽂았네요. 오늘도 저는 최선을 다해 이 파일들을 안전하게 전달하려 합니다. 비록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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