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초 제천 한국
제천은 나에게 두 명의 인물로 수렴된다. 엄정화와 W. 엄정화가 제천여고를 나왔다는 사실도 제천에서 자고 나란 W가 알려줬다. 햇수로 10년 정도 사귀고 함께 살았던 거 같다. 이젠 기억도 가물하다. 함께였던 동안 나를 따라 부산은 자주 드나들었지만 그의 가족이 살고 있었던 제천은 그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딱 한번뿐이었다. 배론 성지가 무척 아름다웠다.
별생각 없이 결정한 일이다. 제천을 가고자 한 것은. 동네에서 제일 괜찮은 사우나에 맛있다고 소문난 것 서너 개 먹고 오는 것을 계획으로 삼았다. 서울 밑에, 강원도 원주와 충청도 단양 사이 제천은 인구 10만이 겨우 넘는 작은 도시다. 청량리에서 1시간 정도만 달리면 도착한다. 제천역 앞은 쪼글쪼글한 소도시의 얼굴 그대로다. 높고 큰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에 시내가 내려앉아있다. 역 앞에서 중앙시장으로 가는 길을 걷는 느낌이 흡사 콜로세움 안을 횡으로 걷는 기분이었다.
배가 고팠다. 제일 유명하다는 순대국밥집을 찾았다. 점심때가 지났어도 여러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있었다. 국밥에 편육을 추가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국밥 안에 고기가 서울의 그것보다 두세 배는 들어있는 듯했다. 특별히 모날 것 없는 국밥을 들이키고 시장통을 살펴보았다. 평일 오후 상인도 손님도 많지 않은 중앙시장은 이름이 무색하게 고요한 편에 가까웠다.
부산과 제천에서 상경해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던 두 명의 소년들은 각자가 태어난 곳을 불편해했다. 또 숨 막혀했고 혐오했다. 알아보는이 하나 없는 서울에서, 한남동과 이태원동의 월세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 편이 훨씬 나았다. 대체로 낙심하는 일이 많았지만 때때로 살만했다.
부산은 탁 트인 바다라도 있지, 분지인 제천은 갑갑한 지형이었다. 빨간 현수막에 내걸린 대머리 정치인은 자신을 무엇인가로 뽑아달라 아우성이었고, 아케이드형 시장은 직사광선 없이 차라리 어두컴컴했다. 노인들은 분식집 앞에 서서 입가에 시뻘건 고추장을 묻혀가며 어묵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튀김은 말라있었고 주방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지금도 그렇고 30년 전에도 그랬을 곳이다. 여기에서 W는 자랐다. 고등학교 1학년 수련회에서 애국가를 메탈록 버전으로 연주하고 자퇴할 때까지.
녹초라는 카페는 제천에 가기 전에 이곳저곳을 검색해 보면서 가보리라 생각했던 곳이다. 제천 시내 한 중간 에 있는 곳이었다. 낡은 건물을 이른바 ‘요즘식’으로 활용하는 데였다. 실내의 자질구레했을 모든 마감들을 뜯어내고 미니멀하게 꾸며놓았다. 서울에서는 하나 건너 또 있을만한 곳이지만 제천 중앙시장 옆에서라면 생경한 풍경이 된다. 이 가게의 공기와 취향을 즐기러 온 이들이 더러 앉아있었다. 말끔히 차려입은 젊은 남자는 문 앞을 서성이기도 했다. 차와 커피는 물론 와인과 칵테일이 있고, 올리브절임 살라미 샌드위치 같은 수입 식료품들로 만들어진 메뉴들이 있었다.
한국같이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된 나라에서 지방에서 태어나 자란다는 건 예민하고 배타적인 감각기관을 지닌 아이들에게는 영 힘든 일이다. 유년시절의 불행을 높은 확률로 보장받는다. ’여기보다 어딘가에‘를 매일같이 꿈꾼다. 먹고 사느라 무감각한 부모와 정서적으로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W가 제천이란 도시에서 그렇게 자랐고, 나도 부산에서 그랬다.
W와 첫 데이트는 명동성당이었다. 첫 만남에서 서로의 유년시절의 이력에 대해서 별 말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무엇을 거쳐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W와의 첫 데이트가 제천에서였다고 상상해 본다면 아마도 이렇게 생긴 카페가 유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근사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서로 이해받고 있다는 위무를 느꼈을 것이다. 나와 동행은 보이차와 아이스 드립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밥을 먹고 다시 들렀다. 와인은 두 가지만 있었는데 그중 하나, 비오니에 와인 한 병을 시켰다. 밤이 되니 카페 안은 낮보다 더 북적이는듯했다. 달큰한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도란도란 나눠마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 같다. 집에 새로 들여놓을 가구 이야기가 제일 길었던 것 같다. 와인은 얼음통에 담아 내오진 않았다. 바 안이 꽤 분주해보여 따로 요청하지 않았다. 어차피 와인 한병을 마시는일은 탄산수 한병 비우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나름 크리스피했던 와인은 마지막 잔에 이르러 눅눅해졌다.
와인을 먹다 보니 소주와 맥주만이 해결할 수 있는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불란서 백포도주를 마시며 이른 결론은 후라이드 치킨을 맛깔나게 튀겨낼 호프집을 찾자는 것이었다. 뒤이어 찾아간 신통찮은 호프집에서 그날 밤은 그렇게 자정을 넘겼다.
제천에 다녀온 뒤 덜렁거리던 금니를 뽑았다. 10여 년 전 충치가 있던 자리였다. 당시의 치료비가 70만 원 정도였는데 W가 3개월 할부로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오래 참으셨네요. 아프셨을 거 같은데.” 의사가 말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사는 마취주사를 쏘아댔다. 발치하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 입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W를 기억할 징표가 사라졌다. 덜렁거리는 금니를 혀로 밀치면서 ‘이거 W가 해준 건데…’라고 되뇔 일도 없어졌다. 더할 나위 없이 개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