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는 타파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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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술

싱가포르는 내 열대기후에 대한 지긋한 사랑에 비추어본다면 꽤나 천대받은 목적지였을것이다. 부자 북한, 검열과 독재, 요상한 악센트, 몇몇 싱가포르인들이 뿜어내는 노골적인 콘디센딩함(도저히 마땅한 번역을 찾을 수 없다. 저 단어가 딱이다.) 여러 가지 선입견들이 지난 시간 동안 싱가포르를 찾지 않았던 이유였다.


볼 일이 생겨 짧은 시간 안에 두 번이나 들르게 되었다. 생각보다 싱가포르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고색창연한 도시와 그곳을 뒤덮고 있는 아열대의 화초와 나무들로 걷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다인종/다민족/다종교 국가를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이 돈 많은 나라의 프로파간다는 세련되고 설득력 마저 있어 보였다. 도시 곳곳에 미술이 있었고 식민지풍의 건물들은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일흔 된 모친과 함께였던 방콕 여행이 기대만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엄마는 첫날부터 지독한 식중독에 걸렸다. 여행 내내 힘들었다. 이 나라에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들었던 생각은 ’아, 싱가포르에 오셨더라면 좋아하셨겠구나‘. 술값이 턱 빠지게 비싼 것 빼고는 음식은 두루 좋았다. 중식부터 말레이 푸드, 인디언, 웨스턴까지. 그리고 이들이 뒤섞인 음식 문화를 보고 있자니 싱가포르가 과연 모든 것을 녹여내는 용광로임을 실감했다.


싱가포르에서 ‘맛’을 찾아낼 수 있을까? 먹어보지도 않고 알 수 없을까? 업장의 창문 밖에서도 이곳이 좋기도 한 데다 다시 오게 될 음식점이라는 사실을 귀신같이 알아낼 수 방법 말이다. 그럴 수 있다면 시간, 돈 그리고 감정소비를 꽤 절약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적잖이 스스로를 대견해할 수 있을 텐데. 게다가 이 낯선 곳 - 화염이 피어오르는 용광로와 같은 도시 싱가포르에서는 꽤나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능력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자신의 삶에 주어진 행운과 허기짐, 모험심과 호기심 그리고 모종의 경험칙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행운부터 호기심은 주관의 영역이니 차치해 두고 비교적 객관적인 경험칙에 대해 열거하여 본다.

주인장이 한가해 보이는 데는 걸러야 한다. 음식점의 주인은 한시도 쉴 수가 없는 직업이다.

손글씨로 직접 적은 메뉴가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 로컬한 식재료 거나 제철 재료 메뉴라면 필승이다.

화분이 많은 가겟집, 게다가 그것들이 오동통 푸릇푸릇하다면 그냥 꽃집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손님과 주인장의 사적 영역이 혼재되어 있다면 또한 지나치는 게 맞다.

간판이 심플할수록, 중언부언이 없을수록 맛은 반비례할 것이다.

말쑥히 차려입은 고연령자가 손님으로 앉아있다면 시도해 보라. 애들은 뭘 모른다.


행운을 실험해보고 싶었던 싱가포르의 가겟집은 숙소 근처에 있었다. 딤섬집과 환전 때문에 몇 번 들락거렸던 실내형 호커센터 안에. 그러던 차에 눈길을 끌었던 곳이다. 내부는 작았다. 콘솔 테이블이 매장 창가로 둘러져있었고 바를 둘러 예닐곱 개의 스툴이 있었으나 수용인원이래 봤자 대여섯 명일 것이다.

모데라토 정도로 친절한 주인장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차려내느라 분주했다. 와중에 손님과 드문드문 담소를 나누는 그는 가게를 들어선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고 말해주었다. 그릴드 샌드위치 전문이라 하니 두 종류 정도를 시켜보았다. 목을 축일 이태리 와인을 한병 시켰다. 가벼운 타닌감이 식욕을 돋우는 수수한 적포도주였다. 싱가포르의 폭력적인 주대를 감안하다면 병 째로 먹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다.


작은 가게는 순식간에 빵과 치즈 굽는 냄새로 가득찼다. 누가 봐도 이방인들인 우리에게 한 손님의 우호적인 시선이 도달했다. 다찌에 앉은 중국계 싱가포르인 남성이었다. “위 아 프롬 서울.”이라는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팩트를 - 꽤나 정확한 내용들을 언급하며 건배를 권했다. 그쪽이나 우리 쪽이나 ‘잔을 말리자’는 다짐을 나누곤 각자의 술잔에 집중했다.

첫 번째 와인병을 반이나 비우고서야 음식이 도착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뜨겁고 촉촉한, 치즈를 비롯한 속재료들의 풍미가 꽤나 그럴싸했다. 샌드위치에 쓰이는 빵도 가게에서 직접 구워낸다는 중국계 말레이시안 주인장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음식을 소개했다. 두 번째 와인을 주문할 때는 앤초비와 훈제연어를 곁들인 타파스를 추가 주문했다. 그릴드 샌드위치보다 한 수 위였던 메뉴는 바로 이들이었다. 핑거푸드라기보다는 외려 ‘팜푸드’에 가까우리만치 넉넉하게 재료가 올라있었다. 앤초비는 앤초비대로, 훈제연어는 훈제연대로 신선하고 씹는 맛이 톡톡히 살아있었다. 스페인에 한 번도 가보도 못한 나는 어느 날 싱가포르의 호커센터에 앉아 이태리 와인과 타파스를 먹고 있었다.

조용한 간판, 조리대 아래로 얼굴을 파묻은 분주한 주인장, ‘와인러버’를 환영한다는 손글씨 메뉴, 50대는 족히 되어보이는 손님들. 내 경험칙과 이다지도 맞아 떨어질 일이란 말인가. 나의 심장은 자긍심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나의 인사이트란!’


둘이서 와인 두 병을 끝내고 얼큰히 취기 오른 몸을 이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오해가 많았던 싱가포르에게 미안할 정도로 흡족한 마음이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일로 가득했다. 싱가포르에 다시 오고 싶어졌다. 어디가 되었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은 결국은 산뜻한 기억때문이리라. 씨유순 싱가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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