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소상공인을 위한 파반느

비스트로알베르 서울 한국

by 낮술

미아동의 어느 뒤안길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이태리 식당 ‘비스트로 알베르’는 목이 딱히 좋지 않아도 초입부터 말끔한 가게다. 꾸며대는 말에 서툰 주인의 배우지 않은 친절함이 있다. 상이 차려지는 데에 거침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메뉴를 먹어보면 좋은 재료를 사입하고 계산서를 받아 들면 합리적인 값을 매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식당은 지나가던 이의 귀띔으로 알게 됐다. 오너쉐프 한 사람이 손님맞이를 하며, 와인을 추천하고 모든 요리를 감당하는 원맨 레스토랑이다. 근래에는 와이프 분도 저녁 느지막이 오셔서 일손을 돕는듯하다.


처음에 갔을 땐 단품 메뉴도 있었다. 그땐 샤퀴테리 정도를 시켜서 와인 한 병과 먹었다. 와인과 안주가 무척 달콤했던 것이 취한 와중에도 기억에 남았다. 다음에 가고자 했을 땐 운영방침이 바뀌었다 했다. 단품은 사라지고 인당 3만 원대의 코스로, 2인일 경우 와인 1병, 3인은 2병 주문이 필수가 되었다. 이곳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면 운영방침은 무엇이든 좋다.


조도가 낮은 조명이 켜진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4인석 테이블 하나가 있고, 10개 정도의 의자가 딸린 바테이블이 길게 만들어져 있다. 손님의 바테이블과 마주 보고 있는 오픈키친의 작업대 위엔 어란이나 브로콜리니 같은 귀한 식재료와 하몽이 통째로 올라와있다. 바삭한 식감으로 유명한 소금, 30년 산 발사믹 식초와 한 봉지에 1-2만 원씩 하는 파스타면들이 나뒹군다. 수수하고 무던한 분위기의 주인장은 쉴 틈 없이 요리하고, 그릇에 담아내고, 설거지까지 한다. 그리고 함초롬한 말투로 와인과 요리에 대한 설명까지 틀림없이 해내신다.


어란 파스타, 생선구이와 대하를 올린 리소토, 마지막에 이르렀다는 신호인 피자 4분의 1조각


재료는 그때그때 바뀌지만 코스는 보통 이렇게 진행된다. 빵을 곁들인 상쾌한 샐러드로 시작하고 해산물을 활용한 구이나 셰비체 같은 전채가 나온다. 그리고 원물 재료를 곁들인 뇨끼나 리소토가 나온다. 다음엔 아주 좋은 품질의 육류 스테이크가 나온다. 한 입에도 아주 좋은 고기란 걸 알 수 있다. 소고기는 항상 좋았고 양갈비 스테이크도 꽤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뒤이어 파스타가 나오고, 다음엔 화덕에서 구운 피자가 나온다. 피자까지 끝이 나면 주인장이 직접 만든 티라미수가 나오면 코스는 끝이 난다. 요리들은 고루 맛있고 빠지는 데가 없다. 젠체하진 않지만 수준 높은 요리임에 틀림없다. 이 동네엔 흔하지 않은 경우다. 더욱이 좋은 와인을 좋은 가격으로 손님들과 나누고 싶다는 신념을 가진 주인장 덕분에 코스가 끝날 때쯤이면 이미 몽롱한 상태가 된다.


이곳을 계속 오게 되는 이유를 이른바 ’가성비‘가 아니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실속이 좋다고 해서 또 가고 싶은 곳이 되진 않는다. 어느 업장을 잇따라 가는 이유가 단순히 가격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이 다소 늦게 나오더라도 와인 한 모금을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애틋한 가게가 하나 생긴다는 건 이름 댈 수 있는 모든 성분들이 골고루 맞아떨어질 때다. 여기가 다름 아닌 그런 곳이다.


이런 곳들은 미력하나마 돕고 싶다. 하나 먹을 것 둘 먹고, 벗들을 데려가 후원하고 싶다. 어느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라고 가게 문 앞에 써붙인 종이와 작별하고 싶지 않다. 모쪼록 이런 곳과 같은 좋은 식당이 존중이 없는 방문객을 정중히 거절할 수 있게 되길. 조금 더 가격을 올려서 이윤을 좀 더 내고 일은 조금 덜 하시길. 그리하여 문을 닫고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우시길.


가장 최근에 먹었던 와인 4병, 하나는 사장님이 먹던 와인을 얻어먹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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