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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평 Mar 28. 2016

거울

-you and me, me and you

1.

그는 좁고 어두운 방 가운데 서있었다. 어둠이 익숙한 듯 주변을 살핀다.

낡은 라디오, 침대, 티비...


'아... 집이다.'


감정이 미간 끝으로 모이고 끝내 넘쳐오를 때 즈음, 그는 눈을 떴다. 책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걸어간다. 간단한 인증 절차를 끝내자 문이 열린다. 문 밖으로 자욱하게 깔린 스모그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스모그 속을 헤집고 지나가는 무리를 익숙하게 지나친다. 인간들은 인권과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몸속에 GPS를 심는 것을 반대했다. 스모그는 단순한 심각해진 자연현상의 일부였고, 금방 해결될 거라 믿었다.


'목적지 도착까지 50m 남았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스모그를 해결하지 못했다. 저항의 마지막은 타협이었고, 순종이었다. 인류에게 스모그는 자연의 이상상태가 아닌,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인류는 그 안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희뿌연 시야 너머에 있는 손잡이를 당기자 방풍실이 드러난다. 파도가 백사장에 자신의 몸짓을 새기듯, 스모그는 방안에 자신의 흔적을 묻히려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가 문을 닫자 강한 바람이 몸 구석구석에 미세먼지를 털어낸다. 강한 바람이 잦아지자 그는 반대편 문 앞에 선다.


'인증되었습니다.'


문은 열리고, 그는 문 너머로 건너간다. 한결 깨끗해진 시야에 거대한 돔 아래 도시가 보인다. 눈 앞의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 중 하나를 타고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의 유리문으로 젊은 남자의 모습이 비친다. 손목의 시계를 본다. PM 7:00 슬슬 도시 안의 낮과 밤이 바뀔 시간이다. 거대한 그래픽의 태양이 지고, 그래픽의 달이 떠오른다. 인공적인 빛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어둠이 도시를 감싼다. 자연스러운 어둠 속에 도시는 빛난다. 어둠 속의 도시는 스모그가 닥친 이전에도, 이후에도 비슷한 모습이다. 그는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한 그는 차가운 거치대에 몸을 뉘인다. 귓가로 '시스템이 휴면 상태로 들어갑니다.'는 안내 음성이 퍼지고, 그는 눈을 뜬다. 머리에 덕지덕지 붙은 뇌파 감지기를 띠어내며 캡슐에서 나온다. 그는 거치대에 누워있는 젊은 남자를 본다.




2.

"오늘도 그 모습... 인 건가?"

"왜?"

"아냐. 그저, 니 얼굴 본지가 너무 오래된 거 같아서."

"잘 봐, 이게 내 얼굴이야."

"알겠어..."

"이리와 자기. 많이 외로웠구나."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품는다. 그는 그녀의 가슴이 이렇게 컸었나? 묻고 싶었지만 참기로 한다. 그녀에게 그것이 크게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3.

'진정한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빌딩의 거대한 미디어 월에 공익광고에 저명한 신부, 스님, 목사, 연예인 등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미친, 나도 저렇게 생겼으면 내 모습을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그의 옆에 앉은 남자는 거대한 광고판을 보며 비웃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축복이다. 영원할 수 없는 젊음을 그와 비슷한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어떤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습도 변형할 수 있다. 그가 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만 있으면 된다. 식별번호. 그것이 그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그렇지 뭐"

그는 여러 가지 가치와 철학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그의 옆에 앉은 남자는 이런 이야기를 지루해할 것이며, 듣는 척하다가 결국엔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옆에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그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적당한 대화거리와 적당한 고민거리를 만드는 것이 최근 그의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그렇지?"




4.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치대에 누워있어야 할 젊은 남자가 방 안에 홀로 서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피부 온도 서비스라거나, 표정 서비스라거나, 성기 부착 서비스라던가 어떠한 옵션도 달려져 있지 않은 젊은 남자의 얼굴에서, 그 눈빛에서 불안함과 당혹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나의 감정인가 그의 감정인가.


젊은 남자는 입술을 조금씩 때고 붙이며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젊은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가 가까이 오자, 젊은 남자는 벌어진 입술사이로 소리 같은 어떤 것을 내뱉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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