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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평 Apr 25. 2016

너에 집중하기

83년생, 아무개


(초고)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사람'


그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스스로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범생이처럼 공부도 열심히 했던 사람은 아니었다는 그는, 최근에는 이도 저도 섞이지 않는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 개인만의 문제나 고민은 아닐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의 해체로 생겨난 개인의 소속감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사회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체제의 국가의 대다수 사람들이 사회적 영역인 직장/직업에서 소속감을 찾거나, 개인적 영역에서 소속감을 찾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이런 체제가 정착된 지 오래된 유럽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큰 차이점이라면 개인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 및 사회활동 집단, 협동조합 등과 같은 시스템이 덜 갖춰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와 비교해서 미비한 시스템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대학교 야구 잠바가 유행처럼 번지는 일이나, 대학교를 서열화시켜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을 자신의 정체성에 투영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그리 신기한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인의 가지는 정체성이라는 것이 사회적/개인적 관계망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사회적 관계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를 자기들 멋대로 규정하려는 시도들이 그리 기분 좋지만은 않아요. 저도 저 자신을 모르겠는데 말이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뻔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바로는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면적 캐릭터'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물론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세상에 '평면적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적, 성격적 모순이야말로 인간성(Humanity)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소속감의 부재와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와 동시에 그는 자신을 '치우쳐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는데 소속감의 부재(혹은 결여)와 규정적 인식의 거부, 균형감각과 같은 키워드를 조합해보면, 그 자신이 소속감의 부재가 큰 고민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것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자신을 끊임없이 미확정의 영역에 밀어 넣는다는 것이다. 정체성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상태가 아마도 그녀가 원하는 자신의 정체성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정체성을 유지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큰 우리나라 안에서는 더더욱 힘들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의식 영역 바깥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경게하기 마련이니까. 그녀를 규정하려는 타인들의 시도는 아마도 이러한 무의식적 두려움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게 그런 종류의 사람은 모든 사람을 규정하고 구분 지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류(流)의 사람이다. 물론 대부분의 그러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아요. 철이 덜 든 거지요.'


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 확실히 그렇다고 이야기하기엔 어렵겠지만 - 다른 방향으로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부분은 글쓴이인 나 자신을 지나치게 투영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지금의 모습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는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이미지와 글이 결합된 창작물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래서 지금 밴드에서 진행하는 '글쓰기'가 좋다고 했다. 혼자 글을 쓰며 어떤 한계에 부딪혔다는 느낌을 받는데,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며 기분 좋은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다루고 싶은 주제나 그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유독 작품과 아티스트에 대한 언급에서 인디 혹은 락 밴드의 예시 - 특히나 9와 숫자들과 넬- 를 많이 들었는데, 그 자신이 아직은 많이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 시기라고 언급하긴 하지만, '많은 아티스트들이 20대 후반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인다'고 말하는 그가 지금 상황을 조금 답답하게 느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했던 말처럼 좋은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가이드'가 존재했다면 좋겠지만, 하지만 키팅 같은 선생 - 죽은 시인들의 사회 - 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은 아니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창작을 향한 그의 발걸음이 멈출 것 같진 않다. 그의 삶이 그렇듯이, 그는 훌륭한 선생이나 조언자 없이도 그 자신의 일을 잘 해쳐왔고, 좀 더 큰 일을 향해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은 그의 작품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1차 퇴고)



그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스스로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범생이처럼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도 아니었다. 최근에는 이도 저도 섞이지 않는 기분을 느낀다.” 

그것이 개인만의 문제나 고민은 아닐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의 해체로 생겨난 개인의 소속감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사회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체제의 국가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사회적 영역인 직장/직업에서 소속감을 찾거나, 개인적 영역에서 소속감을 찾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이런 체제가 정착된 지 오래된 유럽 국가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개인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 및 사회활동 집단, 협동조합 등과 같은 시스템이 덜 갖춰졌다미비한 시스템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대학교 야구 잠바가 유행처럼 번지는 일이나, 대학교를 서열화 시켜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 자신의 정체성에 투영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그리 신기한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인의 가지는 정체성이 사회적/개인적 관계망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나치게 사회적 관계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를 자기들 멋대로 규정하려는 시도들이 그리 기분 좋지만은 않아요. 저도 저 자신을 모르겠는데 말이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뻔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면적 캐릭터'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세상에 '평면적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이 가지는 모순된 감정과 성격이야말로 인간성(Humanity)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앞서 이야기했던 소속감의 부재와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또 그는 자신을 '치우쳐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소속감의 결여와 규정 당하는 인식의 거부, 균형감각과 같은 키워드를 조합해보면, 그에게 소속감의 부재는 큰 고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것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것에서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미확정의 영역에 밀어 넣는 것이다. 정체성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상태가 아마도 그녀가 원하는 정체성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정체성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것이다. 특히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큰 우리나라(-안)에서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의식 영역 바깥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경계하기 마련이니까. 그녀를 규정하려는 타인들의 시도는 아마도 이러한 무의식적 두려움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대게 그런 종류의 사람은 모든 사람을 규정하고 구분 지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아요. 철이 덜 든 거지요.'

그는 어쩌면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기 어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글쓴이인 나 자신을 지나치게 투영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이기도 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의 모습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하지는 못한다.

그는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쓰고 싶다며, 이미지와 글이 결합된 창작물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래서  밴드에서 진행하는 '글쓰기'가 좋다고 했다. 혼자 글을 쓰며 어떤 한계에 부딪혔다는 느낌을 받는데,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며 기분 좋은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다루고 싶은 주제나 그림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언급하는 작품과 아티스트는 유난히 인디 혹은 락 밴드가 많았는데, 그 자신이 아직 많이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 시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많은 아티스트들이 20대 후반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인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 상황을 조금 답답하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했던 말처럼 좋은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가이드'가 존재했다면 좋았겠지만, 키팅 같은 선생 – 죽은 시인들의 사회 – 을 만나는 행운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창작을 향한 그의 발걸음이 멈출 것 같진 않다. 삶이 보여주듯 그는 훌륭한 선생이나 조언자 없이도 자신의 일을 잘 해쳐왔고, 더 큰 일을 향해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그의 작품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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