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집중하기
0.
어느덧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1.
우리는 같은 학부로 입학했다. L은 건축학으로 나는 건축공학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건축공학으로 전과를 했고, 나는 건축학으로 전과를 했다. 지금도 우리는 이 트레이드를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안동에서 내려왔다. 그와는 신입생 O.T에서 처음 만났다. 최근 L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결혼을 축하하며 축사를 읽었다. 정신없었을 두 남녀가 축사를 제대로 들을리 없다고 생각하며, 축사가 어땠는지 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사진이 정말 잘나왔다며, 사진 정리가 끝나면 보내준다고 하였다. 그는 이제 자신의 안위보다 딸린 식구들을 걱정하는 유부남이 되었다.
2.
신입생 O.T때 나는 수많은 동기들 앞에서 비트박스를 보여줬다. 고등학교때 나는 힙합 문화에 빠져들었고, Eminem과 드렁큰 타이거, P-type, 가리온과 같은 힙합 아티스들의 음악에 심취했다. 지금이야 힙합 아티스트가 워너비스타 Wanna be Star가 되었지만, 당시만해도 힙합 음악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뭐 그렇다고 그런 사실이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데 큰 영향은 없었지만. 어쨌건 친구들과 나는 영어 Rap가사를 한글로 적어, Flow와 Rhyme을 분석하고 따라 불렀다. 비트박스도 그러한 행위 연장선에 있었고,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비트박스는 그리 평범한 것은 아니었나보다. O.T이후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름과 함께 비트박스 하는 애라고 알려졌으니 말이다. L은 자신은 마술을 좋아한다며 다가왔다. 친하게 지내자고 했다. 친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서로가 알고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동전 마술로 시작한 L의 관심은 카드 플로리스트 Card Flowerist (카드 셔플링을 꽃처럼 아름답게 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로 이어진 반면에, 비트박스와 같은 흑인 음악에서 시작한 나의 관심은 음악, 전시, 영화 등 좀 광범위한 문화 일반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삶을 바라보는 L과 나의 시각차이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3.
그와의 대화는 매우 즐거운 일 중 하나이다.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이 없는지, 항상 다른 해석으로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 영역은 분야와 깊이를 가리지 않는다. 정치, 철학, 사회, 경제와 같은 일반적인 영역에서부터 연애, 취업, 성격 등의 사적인 영역까지. 철학적 대화가 상스럽게 변하기도 하고, 상스러움 속에서 철학적 생각을 읽어내기도 한다. 너무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지 않고, 너무 무거워서 힘들지 않다. 우리의 대화는 무거움과 가벼움 가운데서 두 영역을 오간다.
4.
나는 L이 크게 화내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는 화난 상황에서도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이성을 잃고 화내는 모습을 상상해본적이 없다. 아마 화가 났더라도 집에서 혼자 푹 삭혔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룸메이트인 형과의 불화에 대해서 이야기한적이 있다. 두 사람은 깊은 감정의 골을 가지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전적으로 한 사람만의 감정적 대응으로는 생기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그 사람이 아니고서야, 네가 그 룸메이트 형에게 어떤식으로 상처줬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L이 그것을 인정했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분이 매우 상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L이 매우 기분 나빴을 것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야는 그냥 같이 욕이나 했으면 됐을 것을, 쓸데없이 진지했다고 생각한다.
5.
L과 그의 친구와 함께 동물 잠옷을 입고 경북 지역을 여행했었다.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좋아했다.
우리는 놀이공원에 들어갔는데, 중학생 소녀들이 소풍을 왔다. 소녀들은 우리를 보며 신기해 했고,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기들은 우리를 보면서 신기해 했고, 엉덩이 부근에 꼬리를 잡으려 우리를 따라왔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우리의 옷차림에 관심이 없었다.
6.
그의 선택은 언제나 현실적이었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즉흥적이었다.
우리는 같은 동아리에 들어갔다. 1학기가 안되서 그는 동아리를 탈퇴했고, 나는 머물렀다. 하다보니 나는 동아리 회장이 되어있었고, 그는 구조 연구실 연구생이 되었다. 글쎄 1학년을 떠올려보면 그와의 추억이 많지는 않았다. L은 당시 내 여자친구와 더 친했다. 그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고딩과 대딩의 경계에 있었다. 대학교 친구들만큼이나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도 길었다. 사실 우리는 그리 친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와 더 친해진 것은 아마 제대 이후일 것이다. 그는 자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는 심심하면 그의 집으로 놀러갔다. 학교에서 지낸 시간 만큼이나 그의 집에서 보낸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10년을 알고지냈는데, 월드컵은 한 번 밖에 같이 보지 않았다.
야구를 보지 않았던 우리는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MMORPG에서 체리곰을 사냥했다.
나는 체리곰의 공격을 방어하려 했으나, 컨트롤 미스로 구르기를 시전했다.
친구들은 웃기다며 놀렸고, 나는 머쓱했다.
우리는 공모전을 나갔고, 입선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