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평 Aug 11. 2016

아파트

나는 학생이었고,

그녀는 직장인이었다. 정확히는 인턴이었다.


그녀가 마칠때까지 직장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의도는 왠지모르게 항상 이질적이고 괴리감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마천루의 숲에서 사람들이 흘러나왔지만, 사람의 흔적은 없었고, 해가 진 하늘에는 사무실의 불빛들이 꺼지지 않았다. 마천루 사이 골목길에 떨어진 담배꽁초, 가로 조경에 버려진 쓰레기가 더 인간적이었다. 인간적인 것들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물들이 인간의 흔적을 대신할 수 있음을 그 때 알았다.


일을 마치고 나온 그녀는 지쳐있었다. 나는 방학을 맞은 대학생이었고, 그녀는 인턴이었다. 나는 그녀의 피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뻤다. 지친모습마저 이뻤다. 그러나 한편으론 사라지고 싶었다. 그녀는 인턴이었지만 직장인 같았고, 나는 너무 철이 없어 보였다. 그것을 내색하진 않았다. 그냥 그녀가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같이 더운 여름이었다. 나란히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땀이 났다. 그래도 손을 잡고 싶었다. 그녀는 땀이 나는게 싫었다. 우리는 손가락을 걸치는 것으로 합의했다. 여의도 환승센터까지 걸었다. 나는 의미없는 농을 던졌고, 실없이 웃는 너의 얼굴이 이뻤다. 너무 이뻐서 보람찰 정도였다. 내 이상형은 우는 모습이 이쁜여자였지만, 너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버스를 탔고, 버스는 강을 가로질렀다. 닭장같은 아파트를 보며, 나는 저런 곳에서 살고싶지 않다고 했다. 너는 아파트가 좋다고 했다. 특히 한강변의 아파트는 더더욱 좋다고했다. 지금도 강을 건너며 아파트를 볼 때면 니 생각이 난다. 나는 똑같은 공간에 갇혀서, 똑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강요하는 아파트가 싫었다. 아마 너는 불안한 삶을 안정시켜줄 아파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너는 스스로가 속물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아파트를 보며 넌 저 부동산의 시장가치가 얼마인지 예상했을까? 한강변 아파트에서의 삶이 부러웠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너는 친구와 원룸을 나눠쓰고 있었은까. 니가 원한건 라이프 스타일과 그것을 즐길만한 경제적 능력이었을지도... 너에게 아파트라는것은 그런 것이겠지. 나에게 아파트는 재미 없는 것이다. 시시한 것이고, 일종의 폭력처럼도 느껴졌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공간을 내어주며, 똑같은 삶의 방식을 강요한다. 29평은 29평의 꿈을, 36평은 36평의 꿈을 꾸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평수로 꿈의 크기를 제한함으로써, 계급을 재생산하는게 아닐까. 나는 내 꿈이 아파트에 갇혀버릴까 두려웠다. 그런 나는 지금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만 가졌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것같은 아재가 되었다. 아파트가 아니라도 그냥 5억이 있었으면 좋을거 같은 아재. 나같으면 아파트 살 돈이 있으면 집을 짓겠지만...


우리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너는 닥터드레 헤드폰을 끼고는 음악을 들었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유난히 짧았던 너의 새끼손가락을 만졌다.

너는 버스가 좋다고 했지만, 난 서울생활이 몇 년인데,

아직 버스가 낯설다.

매거진의 이전글 to. 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