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네? 아... 안녕하세요..."
그녀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이었을까? 나를 피한 걸까? 당혹스러웠을까? 나를 피하는 것 같은 인상은 아니었는데, 내가 말을 거는 것이 못내 부담스러운 일이었을까... 나의 가장 큰 단점은 머리가 너무 빨리 돌아간다는 것이다. 계산이 너무 빠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의적 판단과 계산이 빠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자의적 판단과 계산을 통해 예측한 행동반경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는 것을 빼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람은 가까울수록 예측하기 힘든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친구와 가족은 항상 내 예상 반경에서 떨어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내 인식밖에 존재한다. 어쩌면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는, 그저 대면 대면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그 사람의 행동 패턴 정도가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다.
"오랜만이네요."
"아 그렇죠."
"어떻게 지내셨어요?"
"많이 바빴어요."
"얼굴 보기 힘드네요."
"그러게요."
말을 이어가는 게 어색했다. 이 상황에서 이런 대화 주제를 던진다는 것이 상대에게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지만, 나는 그녀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감정은 항상 내가 인지 할 수 있는 바깥에 존재한다. 그녀와 나는 완벽한 타자인 것이다. 우발적 사건은 항상 경계에서 생겨난다. 그녀와 나는 나란히 걷고 있지만, 둘 사이에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우발적이고 의외의 사건은 더더욱. 그녀와 나 사이의 사건은 항상 내 생각의 범주 안에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경계는 맞닿아 있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서로 경계를 맞닿지 않아도 괜찮은 거리를 익혀버린 게 아닐까 싶다. 나도 기분 상하지 않고, 상대방도 덜 부담스러운. 서로의 정보는 주고받지만. 감정은 주고받지 않는.
별 내용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데, 그녀는 나를 어느 정도 파악한 듯이 이야기한다. 그냥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나는 어떤 이미지일까? 데카르트는 존재에 대해 의심하며, 계속해서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하나를 생각한다. '의심하는 나는 의심할 수 없다.' '존재에 질문하는 나를 의심할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나에게 질문하는 존재는 내가 아니고,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나도 나는 아니다. 나는 무엇도 하지 못한 체 그녀 속에서 '내'가 되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나의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오롯이 그녀가 만들어낸 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