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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 전문지 '서정과 현실' '문화예술 에세이 '란에 이미 발표한 글입니다.
마르크 샤갈과 그가 그린 자화상.
그림을 그린다. 한 남자가 그림에 일생을 바친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그에게 그림은 자신의 삶이다. 사람들이 듣는
것처럼 샤갈은 본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곡예사들, 어릿광대의 바
이올린, 피리를 부는 수탉, 황홀함과 환영, 감동적인 왕국이 그의
손끝에서 빚어진다. 이세상은 그의 꿈 안에서 모든 이들이 행복할 날을
열어 줄 밤인 것 이다.
(루이 아라공, 부다페스트 전시회 카달로그 서문. 1972년 4월)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 밖에 낼 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진실 된 예술은 사랑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기교이고 나의 종교다. <샤갈>
내가 샤갈의 스탠드 글라스 앞에 섰을 때 떠 오른 샤갈의 글귀였다.
취리히 프라루 뮌스터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이 투명하다. 반짝인다. 그 투명하고 반짝이는 색채들이 보는 이의 가슴에
파고든다. 그 파고듬이 울려 퍼지는 마법 같은 색채의 흐름이다. 이 재료는 흙이 아니라 ‘하늘’이다. 샤갈
은 겸손하게 빛과 하늘, 대기의 은총을 받아들인다. 그런 자세로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다.
오래 전 겨울, 프랑크프루트에서 무작정 스위스행 기차를 탔다. 도착지는 취리히. 마침 취리히 아트페
어에서는 ‘샤갈 전’이 열리고 있었다. 하루를 몽땅 샤갈 그림에 빠졌다.
전시장의 그림 중 현실이 아닌 우주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연인이 있었다. 그림 제목은 ‘생일’.
1915년 2월 15일. 샤갈은 벨라와 결혼을 한다, 그 열흘 전 샤갈의 생일을 맞아 기념으로 샤갈이 그린 그
림이다. 벨라가 쓴 ‘불을 밝히며’ 글에서 그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생일.
-오늘은 당신의 생일입니다. 당신은 내게 말합니다. 움직이지 말고 그냥 거기 있어요.......나는 아직
꽃을 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붓으로 물감을 찍습니다. 빨강색, 하얀색, 파란색, 검은 색이 튀어 나
옵니다. 당신은 나를 색채의 물결 속으로 끌어 드립니다. 당신은 나를 땅에서 끌어 올리고 당신 자신
도 튀어 오릅니다. ......우리 둘은 아름답게 장식된 방위로 떠올라 날아갑니다. 창밖에서 구름과 푸른
하늘이 부릅니다. <벨라 샤갈 / ‘불을 밝히며’ 중에서>
샤갈과 벨라는 유대인이라는 동질감에서부터 사랑이 싹튼다. 샤갈은 벨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 온 대로 사랑한 대로 글을 쓴다. 그녀가 구사해 놓은 문장은 캔버스에 색을 칠해
놓은 것 같다.
둘은 깊이 사랑에 빠진다. 나는 당신을 보고 꽃과 숲, 사람과 집을 그린다. 그리고 당신의 얼굴을 색칠
한다. 고향 비데브스크에서 보석 세공사의 딸 벨라를 사랑하면서 샤갈의 가슴은 쿵쾅 거린다. -그녀가
들어온다. 그녀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녀 곁에 다가가서 그녀 곁에 있고 싶다. 커다랗고 맑은 그녀의
눈은 나의 눈이고 나의 영혼이다. 라고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말했듯이 벨라가 세상을 뜰 때까지 30년
넘는 세월을 그녀만을 사랑한다.
다음 날, 나는 취리히 호수와 시가지 중앙을 흐르는 리마트 강을 따라 걸었다. 전차들이 오가며 울리
는 경쾌한 종소리를 들으며. 해거름에 프라우 뮌스터 성당에 들어섰다, 취리히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은 그로스뮌스터 성당이다. 12세기경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스위스 최고의 건물이다. 그러나 내
가 취리히에 온 목적은 프라우 뮌스터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기 위해서다. 샤갈이 봉헌한 스테인
드글라스. 성가대 뒤쪽의 창에 그리스도와 마리아상을 비롯해 성서 이야기가 빛을 발휘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터치, 황홀한 색채.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다.
프라우 뮌스터의 스테인드글라스 일체를 요청 받고 샤갈은 그 장소 자체에 매료된다. 엘리아와 야곱,
천사의 메시지, 성모 마리아, 그들에 의해 하늘로 올려지는 예수. 힘찬 터치, 붉은색, 파란색, 초록, 노랑
등의 색체로 프라우 뮌스터 성당 중심에 샤갈의 내면처럼 색채 효과를 낸다. 샤갈의 상상력을 통해 빚어
진 색채 효과. 나는 잠시 천상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이처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샤갈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했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서 스테인드글라
스를 통해 신께 신성함을 부여 한다. 메츠의 생테티엔 대성당 (1958)을 비롯해 많은 교회와 성당, 오페
라 하우스 등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데 주제는 ‘용서와 희망’이었다. 신을 마주한 그의 이런 테
마는 그의 걸작들 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만큼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신께 바치는 빛의 봉헌
이었다.
취리히에서 돌아오는 기차 창문은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아른아른 했다. 프라우 뮌스터 성당의 스
테인드글라스는 취리히 한 복판에 사랑의 시를 전파하고 있었다. 신비한 메신저였다. 성령의 상승하는
힘이었다.
차창 밖의 풍경에 흔들리며 가방 속에서 책을 꺼냈다.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일찍이 꿈꾸어 본 일이 없는 풍경이나 공간을 우리는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
서 이 책은 하나의 꿈이 어떤 현실의 풍경과 서로 만나는 사랑의 기록이다.
내 젊은 날,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때의 아름다움을 바라 볼 수 있는
거리는 또한 아름답다. < 김화영 . ‘행복의 충격’ 저자의 말 중에서. >
나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내가 접어놓은 페이지가 있었다.
-젊은 시절,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이탈리아 영화에서 ,어떤 역의 확성기를 통해 이런 말
이 되풀이 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피렌체로 가는 기차는 오후 세 시에 떠납니다. 피렌체로 가는 기차는 오후 세 시에 떠납니다.
.......그 때 이 후 나는 오후 세 시의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떠나고 싶었다. 그 어떤 것도 오후 세 시의
기차보다는 훨씬 먼 아름다움이었다. <김화영 ,행복의 충격.145-146쪽의 일부)
이 구절을 떠 올릴 때마다 설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도시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이었다. 내
가 떠나고 싶은 곳은 피렌체가 아니라 프로방스 지방이다. 피렌체보다 훨씬 맑고 순한 햇빛. 흰색의 벽
과 주황색 타일의 예쁜 지붕의 집들이 있는 언덕, 그리고 푸른 숲이 어우러진 영화 ‘마농의 샘’에서 보았
던 풍경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프랑스 동남부의 옛 지명인 프로방스는 일조량이 많은 해변을 끼고 있다. 지중해를 껴 안는 화창한
날씨가 화가들을 끌어 들였다. 샤갈, 마티스, 피카소 르누와르 등 많은 화가 들이 마지막 고향으로 이곳
을 찾았다. 이들이 머물며 작업하던 화실이 자연스레 미술관으로 된 곳이 많다. 그래 항상 나는 이곳을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더구나 내 좋아하는 화가 샤갈의 화실과 그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곳도 프로방스
이다.
그 몇 년 후, 나는 니스 공항에 내렸다. 오렌지 빛깔 같은 밝고 달콤한 날씨였다. 우선 숙소를 잡아 짐
을 놓고 니스 역 프렛트홈에 서 있었다. 샤갈이 오래 머물었던 생풀 드방스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그
곳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다. 그래도 나는 오후에 떠나는 기차를 타고 싶었다. 오후 세 시는 좀 비
켜 있었지만 햇빛 찬란하게 부서지는 프로방스 어느 역에서 한낮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싶었다. 오랜
열망이었다.
프로방스 지방의 중심 도시인 니스 역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넉넉하고 행복했다. 마음이 행복하면
주위의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 니스 역의 순하고 달콤한 햇빛은 반짝였다. 먼데서 온 손님을 반기 듯
주위를 맴돌며 껴안고 어루만졌다.
기차는 나를 카네쉬르메르(cagnes svr mer)에 내려 줬다, 버스를 타고 20분을 오르는 산 중턱에 중세
시대에 건설된 보트 같은 모습의 생폴드방스가 보였다.
16세기 성벽으로 둘러싸인 생풀드방스는 미로 같은 돌길이 호기심을 돋운다. 미로(Miro) 가 디자인한
동화 같은 산책길에선 이곳에 와서 그림을 그렸던 샤갈, 세잔, 미로, 마티스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이 떠
오른다, 떠오를 만큼 갤러리가 많다.
1985년 3월 28일 마르크 샤갈은 이곳 생폴드방스에서 평화롭게 삶을 마감한다. 98세. 그는 이곳에 묻
힌다. 샤갈은 늘 프로방스에 와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곳에서 나는 옷을 모두 벗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 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렇게 내가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슬퍼요.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
지. 그림을 그리는 것뿐입니다.
그가 거기 생폴드방스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었다. 그의 묘위로 햇빛이 쏟아졌다. 주변엔 풀꽃도 몇
송이 피어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발을 뻗고 앉았다. 그림은 그에게 창문이었고 그림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날아가고 싶어 했다. 모든 풍경에서 감동을 받는다는 샤갈은 꿈이 아닌 삶을 그린다고 했다.
그의 그림에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오는 사물, 동물, 인물들이 있다. 천사 악마, 어릿광대, 발가벗은
그의 약혼녀, 옷을 입은 남자, 소박한 에로티즘의 연인들, 바이올린, 사다리, 괘종시계, 꽃, 물고기, 염
소, 당나귀, 소, 가난한 통나무집. 이런 것들이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그려져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
한 것처럼. 생각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배열해 놓은 것 처럼. 나는 이런 그의 그림 속에서 웃는다. 웃으
며 아주 편안해 진다.
커다란 물고기가 공중에서 끌고 다니는 괘종시계. 물구나무를 선 채 걷고 있는 사람들, 공중으로 날
아다니는 연인 ...모두가 펄펄 살아있는 색채로 그려져 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즐겁게 뒤죽박죽이 되
어 있는 샤갈의 그림. 나는 이 그림을 거꾸로 세웠다 바로 놓았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감상한다. 분명 낯
설고 혼란스러운데도 왠지 친숙하게 스며든다. 그림들은 여러 형태의 우화 속의 이야기이다. 이 우화들
이 내가 꿈꾸는 상상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인다.
어린 시절 즐겨 보아왔던 내용이 풍부한 그림 책, 내가 어린 시절에 꿈꾸어 본 세계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감미로움 속에 갇히게 된다. 행복해 진다. 현실이 꿈인 것 같고 무의식이 의식 같은 샤갈의 그림
에서는 시간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죽어서도 샤갈에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나는 샤갈에게 말을 건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당신 생일날 벨라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었죠?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하다니 나는 날짜 같은 거 전혀 모르고 살지 않소?
당신이 젊은 시절에 즐겨 걸었던 다리 위. 강물이, 바람이, 하늘이 구름이 밀려오는 강가에서 모자 하
나가 불쑥 나타나 말을 걸었죠?. -안녕하세요? 손 하나가 인사를 하듯이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다.
-아직도 당신에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까? 당신의 그림은 60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있는 것
도 있잖습니까?
-아직도 당신은 인생과 예술의 완벽함은 성서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네. 예술은 종교적인 행위이지. 성스러운 예술이란 명예나 물질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창조
되어야 하네. 하느님이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세상의 모두를 사랑했듯이 사랑 안에서 잉태 된 예술만
이 감동을 줄 거네.
샤갈은 60년대 후반에 생폴의 자신의 집 벽을 아름답게 꾸민다. 말년에 이곳에 와 머물면서 옷을 다
벗고 오직 그림만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명예도 무엇도 다 떨치고 그림만 그리고 싶다고 한다.
꽃이 언어인 나라, 봄볕에 발그레해진 연인들, 물고기가 하늘위에서 날아다니고 새들의 맑은 웃음소
리가 괘종시계 속에서 들리고 하얀 구름이 저 집의 굴뚝 속에서 올라오는 나라, 바이올린을 켜는 시인,
날아다니는 어릿광대....
아, 그가 이곳에 와 옷을 벗어 던지고 그리고 싶은 그림은 또 있었을 것이다. ‘백색의 그리스도수난
도’에서처럼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 중앙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연민. 그에게 그리스도는
삶의 중심에 있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사랑과 희생으로 십자가 위에서 숨진 그리스도가 원하는 세상을
선과 색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엔 본부에 기증한 ‘평화’ ‘메츠’ 대성당의 ‘낙원’은 창조주의 찬란한 찬가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그
린 작품이다. 종교적인 사랑이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는 예언이다. 모두가 초월적인 성서에서 끌어낸 내
용들이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해관계를 떠난 진정한 사랑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
곳에서 꽃피우는 세상을 꿈꾸며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사이 주위는 조용했다. 나는 엉덩이를 툴툴 털며 일어서며 다시 물었다.
-아직도 새로운 색채로 사랑의 세계를 그리고 계신지요? 인생도 사랑도 사랑이 바탕이 되면 모든 것
이 가능하다고 믿으시는 지요?
샤갈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저 세상도 갈등과 욕심이 뒤섞여 있는 세계일까. 그런 의문을 안고 공원묘지
의 돌담을 건넜다.
유럽의 여름은 밤 10시가 돼도 훤하다. 돌아오는 차창 밖은 어두웠으니 꽤나 많은 시간을 생폴드방
스. 그곳에 묻힌 샤갈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나보다.
니스의 상점들은 이미 닫혀있었다. 식당도. 페스푸드 가게도.
니스의 중심 거리는 장 메드셍 거리이다. 역에서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다. 문 닫힌 상점들을 지나
장 메드셍 거리를 따라 해안으로 가고 있는데 왼 편에 불빛이 찬란한 거리가 있었다. 상점 앞 노천카페
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거리 연주자들이 기타를 켜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도로가 바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
니스의 프롬나드데 장글레 거리
남국의 청취가 물씬 풍겨 나오는 야자수와 아름다운 건물들, 화려한 조명. 밤이 되면 이 도로엔 차도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관광객들 틈에 끼어 한참을 서 있었다.
니스는 누구나 추천하는 여행지이다. 꼬드다쥐르라고 불리는 남프랑스 툴롱에서부터 칸느, 니스, 모
나코와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40킬로미터의 천연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다. 또한 니스는 카니발로 유명한
도시이다. 카니발은 프롬나드 데 장글레 거리에서 열리는데 15일 동안 엄청난 양의 꽃가루가 뿌려진다.
도시 전체에 온통 종이꽃가루가 날린다. 카니발은 왕의 도착으로 시작하여 여왕 선출, 꽃마차 행렬,
야간 퍼레이드 등으로 이어진다. 퍼레이드에는 큰 인형들로 단장된 카니발 퍼레이드와 수많은 꽃들로
장식된 꽃 퍼레이드가 있다. 마지막 날에는 모든 참가자가 모여 그랜드 퍼레이드를 진행하는데 오후 2
시30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니스앞 바다 배위에서 (또는 해변가) 인형 화형식과 불꽃놀이
가 성대하게 펼쳐진 후 카니발은 끝을 맺는다.
니스해변 / 한낮의 열기로 따뜻해진 몽돌 위를 걸었다.
현재의 니스의 밤과 낮은 찬란했다. 낮에 따끈하게 데워진 해변가의 몽돌은 따뜻했고 고층의 호화 호
텔의 네온 싸인, 옛과 다름없는 건 맑고 밝은 햇빛뿐일까. 아마 샤갈이나 마티스가 살아 있다면 화실을
옮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샤갈 미술관에 가까이 갈수록 ‘아니다’라고 고개
를 저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곳곳에 이정표가 붙어 있었다. 거리 같은 거 따지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큰길
을 건너고 골목길로 들어서고 시미즈 언덕을 오르니 좀 한적한 곳에 샤갈 미술관이 있었다.
미술관은 아침 10시 오픈. 20-30명의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 있었다. 미술관 왼쪽의 정원은 짙은 푸름
으로 그늘을 드리워 청정한 쉼터를 만들고... 고즈넉했다. 해변가의 현란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문이
열리는 동안 나는 정원을 걸었다.
-나는 모든 풍경 앞에서 감동을 받네. 인간이나 삶에서도. 당신도 그러는가?
이번엔 샤갈이 내게 물었다. 풍경이나 삶, 인간? 내 언제 그런 여유를 가지고 걸어왔던가.
풍경이 언제 내게 말을 걸어왔던가. 아니지.
-아, 아 저는 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에요. 흘려버리고 모두가 맘에
안 든다고 투덜거리고....
-예술은 과학이 아니야, 자네는 직감이 없는 예술가로군. 똑같은 닮은꼴을 만들어내는 장인일 뿐이
야.
부끄러웠다. 감정 없는 장인일 뿐인 자신이 부끄러워서 시선을 돌렸다. 문 열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먼저 대형 성서 작품이 눈에 띄었다. 이 중 17점은 샤갈 부부가 1966년에 프랑스에 기증한 작품들이
다. 샤갈의 마음속엔 항상 고향 러시아의 비테프스크가 있었다. 그것은 샤갈의 그림 속에 신화적이고 초
자연적인 세계에서 서커스와 성서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샤갈은 청년기 이후 성서에 사로잡혀 있었다. 성서는 자신에게 가장 위대한 시정詩情의 원천이라고
했다. 1950년 이후 17점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성서 연작을 구상 한다 이 그림이 니스의 시미즈
언덕에 자리한 국립샤갈미술관에 영원히 전시되어있다. 샤갈은 사람들이 이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의 평
화를 얻고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를 바랬다. 종교적인 감정과 인생의 의미,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시
와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이 미술관에 걸어 두고 싶다고 했다.
샤갈미술관이 있는 시미즈 언덕을 내려오며 그의 고백을 떠 올렸다.
-나는 파리 오페라 하우스 천장화 제안을 받고 고민했고 감동했다. 밤이나 낮이나 그 생각만 했다. 나
는 윗부분에서 배우와 음악가들의 창작활동을 아름다운 꿈속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묘사하고 싶었고,
아랫부분에서는 관객들의 의상이 일렁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론이나 방법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다. 오페라와 발레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작업했다.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색채도,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샤갈은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과 색채로 어린아이의 순수와 같은 천진난만 이미지를 화폭에 담았다.
동화 속 꿈같은 세상을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이미지로 풀어낸 그의 그림. 그는 그림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날아가고 싶어 했다.
나는 가끔 도록을 꺼내 그의 그림을 본다, 그의 그림 속에 잠겨 들면서 나직나직 김춘수의 시를 읊는다.
-샤갈의 마을에는 三月에 눈이 온다.
......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
3월에도 눈이 내리는 샤갈의 마을, 당나귀의 커다란 눈 속에 함박눈이 담겨 있다. 오래된 종소리가 괘
종시계를 흔든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레츠메르의 집시 풍 선율,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타고 연인이 꽃
다발을 전한다. 가난한 러시아의 통나무집에 어우러진 축제. 창밖엔 함박눈이 내리고 축제 속 풍경들이
살아나와 방안을 돌며 춤춘다. 샤갈은 팔레트에서 물감을 찍어 인물들에게 화려한 의상을 입힌다. 시인
의 감성이 눈송이처럼 불어나면서 방안엔
꿈과 사랑, 환희가 넘친다. 창밖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아래 그림 참고 )
페테르부르크에서의 환상
나와 마을
백색의 그리스도 수난도
언덕위의 생폴드방스
생폴 드방스의 미로같은 거리.
생폴드방스의 공원 묘지
생폴드방스의 공원묘지에 있는 샤갈의 묘
생폴드방스의 갤러리
니스시내서 시미즈 언덕위 샤갈 미술관을 찾아가는 이정표
니스의 샤갈미술관
샤갈미술관앞에서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샤갈 미술관 내부
샤갈의 싸인.
샤갈미술관에 소장된 그림과 스테인드 글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