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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Apr 10. 2024

시간의 의미 변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읽었던 것 같다. 삶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죽음 때문이라고. 당시에는 그 문장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못 머리를 때리는 문장이기도 했으며 그 문장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짙었다.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죽지 않는다면 삶이 의미가 없을까?


물론 '죽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은 지금까지의 인류사를 보았을 때 현실화 될 수 없는 가정처럼 보인다. 아직까지 죽지 않는 인간은 발견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 등 허구적인 이야기에서나 죽지 않는 인간이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다.


몇 년 전이었을까. 세계보건기구, WHO는 노화에 질병코드를 부여했다. 이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질병처럼 여기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WHO가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려면 최근에 생명공학 분야가 발견한 과학적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꽤 오래 전부터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노화를 막거나 심지어 노화를 역행하는 일의 가능성에 대한 실마리들을 찾아내어왔다. 심지어는 쥐 실험 단계에서는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쥐를 다시 젊게 만들기도 했다. 노화의 원인에 대한 연구 분야도 놀라운 발견들을 이따금씩 발표하기도 한다. 근 몇 년간 생명공학분야 논문 초록이나 네이처, 사이언스 등 유명 과학지 기사들을 보다 보면 노화를 막을 날이, 더 나아가 역노화가 가능한 날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인간이 노화를 지배하는 과학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면 죽음은 보다 더 멀리, 어쩌면 까마득하게 멀리 위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인간이 아직까지 살아보지 못한 삶이다.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도 미리 논의를 해봐야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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