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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누 Jul 08. 2024

2023.7.7/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K에게


오늘은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봤어.

도쿄의 공공 화장실에 대한 창작물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독일의 거장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표백제 같은 나라 일본. 코로나 전에도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길거리에는 쓰레기도 하나 없으며, 눈이 오면 제설마저 완벽하게 해내는 나라.


감독은 공공 화장실을 완벽하게 청소하는 청소부 캐릭터를 생각해냈어. 동시에 자기 자신도 자신이 완벽하게 닦아내는 화장실처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말이야.

그 어떤 욕망도 가지지 않는 금욕주의적인 상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런 사람이야.

감독은 이런 사람이 도쿄를, 더 나아가 일본을 관리하고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아. 어쩌면 그런 환상을 가지고 그걸 바라는 거일 수도 있겠지.


주인공 아저씨는 매일 같이 집 앞을 쓰는 할머니의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깨. 매일 집 앞 자판기에서 같은 커피를 뽑아

마시고, 같은 목욕탕에 가고, 같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거야.


주인공 아저씨의 반복되는 삶을 위해선 또 다른 사람들의 반복도 필요해. 자판기에는 항상 같은 커피가 채워져 있어야

하고, 할머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 앞을 쓸고, 목욕탕과 식당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해.

나는 이 반복이 깨지는 게 자판기가 돈을 먹거나, 음료가 비어져 있을 때라고 예상했어. 내 예상은 빗나갔지.


그만큼 한 사람의 반복은 그 사회의 다른 사람들의 반복으로 인해 완벽해질 수 있어. 주인공의 일상이 가끔 반복되지 않고분열되는 것도, 주변 사람들의 일탈에 의해서야.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분열에 있어. 분열이 주인공 아저씨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 감히 부처 같은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 하는 게 이 영화를 보는 묘미야.


도쿄의 이름난 공공 화장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좋았어.

내가 건축에 관심 많다는 거 알고 있잖아.

안도 다다오, 토요 이토, 반 시게루 같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화장실과, 그 화장실의 특성을 활용한 재밌는 이야기들이 무척 좋았어.


최근에 쓸 데 없는 곳에다가 돈과 시간을 쓰는 게 낭만이라는이야기를 들었어. 나도 어느 정도 공감했는데

그래서인지 도쿄라는 도시가 참 낭만적으로 보이더라.

화장실이라는 역할을 하는 곳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잖아. 그저 잠깐 있다가 나가는 곳이니까 조금 냄새가 나거나 더러워도, 미적으로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잖아.

우리가 한강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컨테이너 박스 같은

화장실들 말이야.


이 영화의 화장실들은 그렇지 않았어. 미적으로 아름다운, 조금이라도 더 편한, 채광이 좋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편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은 충분히 낭만적인 화장실들.

이런 생각을 하니 쓸 데 없는 곳에 돈과 시간을 쓰지 않는 주인공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은 건가 싶더라.

그러곤 영화 속 한 장면이 생각났어. 주인공이 처음으로 쓸데없는 돈을 쓰는 장면.

그 돈은 그의 동료의 낭만을 위해 쓰였던 동시에 자기 자신의 낭만을 위해 쓰였던 거지.


그리고 그런 낭만들이 어떻게 주인공의 삶에 분열을 내고, 주인공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지를 보면

이 영화를 아주 재밌게 볼 수 있을 거야.


언젠가 이 영화를 보고 와서 같이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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