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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Jul 11. 2021

[투더문 To the Moon] 리뷰

진정한 이해와 소통, 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투더문>의 플레이타임은 4~5시간. 조작도 단순하고 설명도 무척 친절하다. 하여 게임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초심자도 접근하기 쉽다. 그럼에도 우아하면서도 스마트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깊은 감동을 이끌어낸다.  

그러니! 가급적, 아니 반드시 이 게임을 해라. 두 번 해라. 세 번 해라. 하고 또 하고 또 해라!   



[주의] 이하 스포일러 1000% 







우선 스토리를 간단히 정리해보자. 이 게임의 플롯은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으나 설정의 특수성으로 인해 스토리텔링이 선형적이지 않다. 하여 아래 내용의 일부는 재구성된 것이다.


주인공 닥터 와츠와 닥터 로잘린은 <지그문트 인생 형성 사무소>의 기술 직원들이다. 이들은 임종을 앞둔 이들의 과거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그들이 꿈을 이루었다는 환상을 품고 죽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다.


두 닥터들이 죽음을 앞둔 노인 조니의 저택에 도착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니는 이미 혼수상태다. 기억의 조작을 위해서는 의뢰인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하기에, 닥터들은 우선 저택과 그 근방을 탐색한다. 조니는 2년 전에 아내 리버와 사별하고 현재는 간병인과 그 간병인의 두 아이, 그리고 주치의와 함께 지낸다. 그의 집은 바다에 면한 오래된 등대 옆에 지어져 있다. 언뜻 보아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대저택이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다소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저택 곳곳에 흩어져있는 수천 마리의 종이접기 토끼 인형이라거나.


닥터들은 "기억형성기"를 작동시키고 접근할 수 있는 조니의 가장 가까운 기억으로 들어간다. 작품 내에서 설명되는 기억형성기의 원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대상자의 모든 기억을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 따라서 인생 경로상의 핵심적인 포인트를 짚어내어 그 시점의 기억들을 일관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의뢰인이 원하는 환상에 대한 통합적인 기억-이미지를 구현한다. 물론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기억 간의 모순이 드러날 것이다. <지그문트 인생 형성 사무소>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조작자들이 수동으로 "일관적인 조작"을 할 수는 없다. 복수의 조작의 효과와 상호작용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결국 가능한 방법은, 접근할 수 있는 의뢰인의 가장 어린 시절 기억을 조작하여 의뢰인의 "소망"의 씨앗을 심은 다음, 그 시점부터 의뢰인이 본인의 인생의 주요 포인트들을 다시 경험하게 함으로써 핵심 기억들을 "스스로 조작"케 하는 것이다. 기억 형성기는 이러한 재경험을 통한 기억의 재구축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닥터들은 조니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들을 어떻게 짚어낼 수 있을까? 사실 그들은 알 수 없다. 그래서 닥터들은 접근할 수 있는 의뢰인의 가장 최근의 기억에 들어가 핵심 기억에 대한 단서를 캔 뒤 그 단서를 매개로 보다 이전의 기억에 접근하고, 또 그 시점에서 단서를 캐서 보다 이전의 기억에 접근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런 식으로 기억들을 역행해 나감으로써 충분히 먼 과거의 핵심 기억에 접근하게 되고 이를 조작하여 "소망의 씨앗"을 심은 뒤 지나온 핵심 기억들(엄밀히 말하면 핵심 기억들의 복제물)을 의뢰인이 재경험하게 함으로써 일관적으로 재구축된 가상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기억에서 닥터들이 알아낸 사실은 조니의 소망이 "달에 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니 자신도 왜 그런 소망을 품게 되었는지 이유는 알지 못한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 그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지그문트 인생 형성 사무소>에 의뢰를 한 것.


이 게임의 묘미 중 하나는, 실제로 게이머가 닥터들을 조종하며 조니의 기억(의 복제물) 속에서 추억의 파편들을 찾아 모으고, 이를 이용해 핵심 기억들을 매개하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기념물(메멘토)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게이머는 탐색과 퍼즐 해결이라는 게임 액티비티를 통해 이를 수행한다.


각설하고, 닥터 와츠와 닥터 로잘린은 조니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다음의 사실들을 알게 된다.


(시간 역순임에 주의. 중요한 사건만.)




- 조니의 아내인 리버는 치명적인 질환을 앓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조니가 짓고 있던 등대 옆 저택 완공 비용 마련을 위해 자신의 수술조차 포기한다. 그리고 사망한다. 


- 등대와 저택 지하실에 뿌려져있던 엄청난 수의 토끼 종이접기는 모두 리버가 접은 것이다. 특히 노란색 배를 지닌 파란색 토끼 인형에 집착하며 조니에게 그것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연신 물어댄다. 조니는 아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이접기를 하는 아내에게 뭔가 해야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 리버는 어느 날 갑자기 긴 머리를 짧게 자른다. 그리고 토끼를 접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 조니는 리버에게 첫 만남 당시의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다. 자신이 리버에게 접근한 것은 특이한 리버와 사귐으로써 뭔가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거라고.

- 사실 리버는 야스퍼거 증후군(경증의 자폐 증후군)을 앓고 있다. 조니는 아내의 병을 부정하고 싶어하지만, 어린 시절 치료를 받아 정상인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리버의 친구(얘도 야스퍼거 증후군 환자다)는 오히려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리버가 부럽다고 말한다.


- 조니와 리버의 결혼식 날, 돌아가는 하객들의 차에 치어 죽은 토끼 시체에서 나온 썩은 냄새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리버는 왠지 죽은 토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 조니의 어머니는 조니를 "조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조니는 그것이 할아버지 이름에서 딴 애칭이라며 싫어한다.


- 고등학생 시절의 어느 날, 조니는 혼자 영화를 보다 도중에 영화관에서 나온다. 리버가 따라나오며 왜 영화를 다 보지 않고 나왔냐고 묻는다. 조니는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해놓고 다른 자리에 앉아버린 리버가 자신을 버리고 간 줄 알고 화가 나 있다. 조니는 왜 자신을 찾지 않았냐고 묻는다. 리버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조니는 역시 넌 특이한 애라고 웃으며 리버와 함께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간다.


- 조니는 용기를 내서 리버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며 데이트 신청을 한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객기에 좀 튀어보고 싶었던 거다.

- 리버는 기억력이 엄청 좋지만 사교성이 부족한 아이다. 늘 혼자 지내며 다들 뭔가 좀 이상한 애로 치부한다.


닥터들은 더 이전의 기억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등학생 시절에서 기억의 조작을 시작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닥터들이 몇 번이나 조작을 시도해보아도 조니의 미래 (기억)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조니는 달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포기하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와츠와 로잘린. 그 동안 조니의 상태는 악화되어 당장 심장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아침을 맞은 닥터들은 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다. 바로 조니가 아주 어린 시절 기억억제제 과다 처방받은 적이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은폐되었고 닥터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동물 사체의 냄새를 이용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닥터들은 은폐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다.


은폐되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충격적이다.


- 조니에게는 사실 조이라는 쌍둥이 형이 있었다. 조니의 모친은 조니보다는 조이를 더 아꼈으나 자동차 후진을 하다 실수로 조이를 치어 죽이고 만다. 사랑하던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렸던 조니에게는 기억억제제가 처방되고 이로 인해 형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잊혀진다. 조니의 모친은 아들을 죽인 충격에 살짝 머리가 돌아버리고, 이후 조니를 조이로 부르며 조이의 인격을 덧씌운다.

- 사실 모친은 조니보다는 조이를 더 아꼈다. 마을 축제에서 조이를 두둔하는 엄마에게 마음이 상한 조니는 혼자 언덕에 오르고 그곳에서 리버와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던 것이 아니었던 게다) 둘은 쏟아질 것 같은 별들과 찬란한 만월 아래에서 서로 마음이 통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리버는 별들은 아마 등대와 같은 것일 거라고, 즉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기 위해 빛을 발하는 그런 등대일 거라고 이야기한다. 야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리버의 처지가 반영된 이야기일 것이다.


리버와 조니는 토끼 이야기를 하다 별들을 이어 토끼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배 부분에 보름달이 들어가게 만든 리버의 작품이다. 이것이 리버가 접었던 파란색/노란색 토끼 인형의 원형이다.


둘은 매년 이 언덕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혹시라도 못 만나게 된다면 달에서 만나자는 아이들 특유의 과장된 약속까지 한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복선까지 이야기 초반에 깔려 있는데-조니의 간병인의 어린 자녀들과 와츠 박사의 대화- 이런 것까지 안배했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둘은 언덕에서 다시 만나지 못한다. 이후 조이가 사고사하고 조니는 리버와 만났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조니는 먼저 떠난 아내 리버를 그리워하며 무의식 중에 먼 옛날의 약속, 즉 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왠지 달에 가고 싶다"는 소망의 형태로 떠올리게 되었던 것. 하지만 약속 시점의 기억이 은폐되어 있었기에 그 소망의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또한 닥터들의 조작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이유도 명확하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조니는 리버와 늘 함께 지내게 되었으므로 달로의 여행을 소망할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닥터들은 논쟁한다. 닥터 로잘린은 계약은 계약이라며 닥터 와츠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떻게든 조니를 (그의 기억 속에서) 달로 보내려 한다. 로잘린은 고등학교 시점에서 조니와 리버가 만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조니의 데이트를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리고, 동시에 조이를 사고에서 구해냄으로써 조니의 기억 결손을 막는다. 때문에 조니는 어린 시절부터 달로의 여행을 강렬하게 원하게 되고,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미친듯이 공부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로 인해 조니의 기억 속에서 아주 어린 시절 이후 리버와의 추억은 모두 소멸하고 만다. (이 시점에서 예의 리버의 대사,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가 상기되며  'Everything's Alright'이 BGM으로 깔리는데, 정말 눈물이 펑펑 쏟아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가사 중에 '세상이 사라져도 달만을 바라보며 우리는 함께 하리라'는 부분이 있는데... 등대의 이미지까지 오버랩되니 ㅠ) 


여기서 끝? 아니다. 로잘린의 노림수가 있었다. 조니는 결국 NASA에 우주비행사로 입사하게 되고 거기서 역시 비행사로 입사한 리버를 만나게 된다. 그녀 역시 달에서 만나자는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왔던 것.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 싶겠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재편된 조니의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임을 상기하라.  


결국 조니와 리버는 뜨거운 재회 이후 함께 달로 가는 우주왕복선에 몸을 싣게 되고... 소망을 이룬 조니는 모두가 축복하는 가운데 행복한 추억을 안은 채 조용히 숨을 거둔다. 


자, 이야기를 대충 정리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무수한 복선들은 반의 반도 이야기하지 못했네.


내용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어째서 이 작품의 스토리가 위대한지에 대해 간략히 논해보자. 


한 마디로 말해, 아이러니한 운명적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가능한 것이란 무엇인가?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이해와 소통이다.


아이러니의 본질은 무엇인가. 불일치다. 말하고자 하는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불일치, 또는 말하는 자와 말한 것 사이의 불일치. 그 간극에서 유래하는 위치 에너지가 낳는 강렬한 의미의 전달력. 이것이 소통의 스타일로서의 아이러니가 갖는 힘이다. 


어떤 불일치?


1. 리버의 행위, 그 텍스트와 서브텍스트 사이의 간극 


리버의 행위는 처음에는 정신장애의 증상으로만 이해된다. 혹은 리버와 조니의 소통 불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만 이해된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의 기억까지를 들여다 본 후, 그녀의 행위는 첫만남에 대한 조니의 기억을 되살려내기 위한 끝없는 노력으로 재표지화된다. 새로운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등대에 대한 리버의 집착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녀는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조니와 자신의 추억을, 그 기억을 되살려내기 위해 투쟁했던 것이다. 파란-노란 토끼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위도 처음에는 단지 강박적 증상으로 보였지만, 실은 조니의 기억을 일깨우기 위한 처절한 시도였던 것. 야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해 소통에 서툴렀던 그녀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기에.


2. 조니의 기억, 현실과 환상 사이의 간극 


이 이야기는 결국 배드엔딩이 아닌가? 혹자는 그렇게 물을 것이다. 결국 현실세계에서 조이는 허무하게 죽었고, 리버도 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죽었고, 조니도 조작된 기억의 환상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게 아닌가? 사실 그렇다. 하지만 조니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말 또한 진실이다. 인생이란 게 결국 기억의 총체라면, 조작된 기억이라도 당사자에겐 현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라는 아주 오래된 존재론적/인식론적 질문을 이 작품은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의 함의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한 순간에 획득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실천적 명제로까지 확장된다. 다시 말해 깨달음만 있다면, 그래서 과거의 경험에 대한 "온당한" 해석을 해낼 수 있다면, 설령 비루하고 후회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온당한 해석이란 곧 자신의 운명에 대한 긍정이며, 조니의 사례에서는 "과거 어쩌면 그렇게 행복할 수도 있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만을 품은 인생도 "과거 그렇게 행복했다"는 필연성을 품은 인생과 완전히 동일한 수준에서 의미있고 가치로울 수 있음을 긍정하는 것이다.


3. 리버와 조니의 사랑, 이해와 이해 사이의 간극 


이 작품 최대의 아이러니는 리버와 조니가 서로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떤 의미의 층위에서는 서로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조니는 조작된 기억(삶)에서의 경험을 통해 리버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이것은 리버의 진심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겪은 리버와의 소통 실패의 부산물로서 조니의 무의식에 쌓인 사고와 감정의 찌꺼기를 토대로, 조니가 재구성해낸 가상적 산물이다. 그것은 비록 가상적인, 조니의 뇌에 의해 시뮬레이션된 리버의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리버의 실제 마음과 맞닿아있다. 여기서 등대의 비유가 얼마나 절묘한지 드러난다. 이쪽 등대 A에서 저쪽 등대(혹은 별) B의 빛을 바라볼 때, 사실 A의 사람은 그 시점의 B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즉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에, 표현과 이해 사이에는 늘 시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표현이 곧 이해의 결과라 한다면, 이는 이해와 이해 사이에는 늘 시차가 존재한다는 말로 환언할 수도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조니와 리버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극단적 소재를 통해, 모든 소통이 사실은 그러한 것이라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것으로서만 소통은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러한 한계 내에서만 우리는 서로를 보듬을 수 있다는 가혹하지만 아름다운 진실을. 


아이러니? 아~ 이러니 감동할 수밖에!


절묘한 타이밍에 깔리는 아름다운 BGM 또한 이 게임의 백미다.



게임이 새로운 예술의 장르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내 인생의 근본적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 <투더문>.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준 제작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당신과 내가 비록 한번 만난 적도 없음에도 이 아름다운 게임을 통해 진정한 소통을 이루었음을, 나는 추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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