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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Jul 11. 2021

[앨런 웨이크] 결말 해석

텍스트 내적 창조자의 영원한 비극

드디어 엔딩을 봤네! 

게임성, 장면 연출, 시나리오 모두 훌륭한데 유일한 단점이 3D 게임이라 집중하다보면 좀 어지럽다는 거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하기가 부담스러워 짬짬이 진행. 원래 미드같은 게임이라 본질에 걸맞은 플레이였는지도.    



이 게임은 어둠만으로 공포를 자아내며, 플레이어의 주무기가 빛인 만큼 광원효과가 매우 섬세하게 구현되어 있다. 밤에 불 끄고 하면 허접한 좀비들 나오는 고어물보다 훨씬 공포스럽다. 가로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 


적(= 그림자 괴물)들에게 충분한 양의 빛을 비추어 어둠을 몰아내야만 공격이 먹힌다는 독특한 액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레 조준사격을 강요하는 격이라 탄이 빗나갈 확률은 낮은 반면, 빛공격/사격/도주의 콤비네이션을 적절히 조합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FPS보다 순발력을 요하는 면이 있다. 


적들이 그림자 괴물이기에 어둠이 응결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공포를 극대화한다. 물론 좀 진행하다보면 패턴에 익숙해져서 둔감해지지만. 


그 밖에도 앨런 자신이 쓴 원고를 게임 내에서 주워 모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전체 스토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시스템적 장점. 


음, 스토리는-  


레전드급 작가로 명성을 날리던 앨런 웨이크는 소설 한 줄도 못쓰는 슬럼프에 직면하고 아내 앨리스의 배려로 휴양길에 오른다. 하지만 도착 첫날밤 아내가 별장 앞 호수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앨런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입수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사고난 자동차 안이다. 시간은 아내가 사라진 날로부터 일주일이 흘러가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앨런을 죽이려는 그림자 괴물들이 달려드는, 충격과 공포의 하루하루가 시작된다. 앨런은 손전등과 권총으로 그림자들을 물리치며 어둠의 심연 속에 갇힌 앨리스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하는데...


게임을 진행하면 서서히 진실이 드러난다. 파편적으로 드러나는 진실들 중 중요한 것들만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호수에는 예술작품을 현실화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어둠의 존재는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힘을 강화하고 싶어한다. "어둠"은 앨리스를 호수 바닥으로 끌어들인 뒤 앨리스의 구원을 미끼로 앨런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한 것이다. 즉 앨리스를 살릴 수 있는 내용의 소설을 쓰라고 앨런을 꼬드긴 것. 하지만 소설을 쓸수록 어둠의 힘이 강화되고 마을의 희생자들만 늘어가는 것을 보다못한 앨런은 자기자신을 소설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어둠의 방에서 탈출하게 된다. 자기가 쓴 미완성의 소설 속으로 뛰어든 셈.


게임에서는 바로 이 시점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므로 게이머는 스토리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혼란을 겪기 쉽다. 앨런에게는 지난 일주일 간의 기억이 없는데 이는 어둠의 방에 갇혀 소설을 쓴 "현실"의 일주일이 소설 속에 반영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게임 자체의 이야기(층위 A)와, 그 이야기 속 소설가인 앨런이 쓴 소설(층위 B), 그리고 그 소설 속 주인공이 쓴 이야기(층위 C)라는 세 층위를 교묘한 순환구조로 엮어 놓는다. 무슨 소리냐 하면, 앨런은 소설(층위 B) "속으로" 탈출해서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어둠을 물리치고 별장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하고 거기서 자신의 소설(층위 C)을 해피엔딩으로 완결짓는데, 이를 통해 어둠의 존재는 소멸하고 마을에 평화가 온다는 해피엔딩이 층위 A의 스토리에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애초에 층위 C의 이야기를 누가 썼단 말인가? 층위 B의 앨런은 그림자들과 싸우며 "이미 자신이 써놓은" 원고를 모았을 뿐이다. 층위 A의 앨런은 "이미" 층위 B의 이야기속으로 도주하고 없다. 그렇다면 이 스토리 전체가 무에서 창조된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어차피 하위 층위(픽션)가 상위 층위(현실)에 영향을 준다는 설정이므로 (양자역학적 필연성 조작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는 단서가 주어지기도 한다) 인과성과 시간의 흐름에 있어서의 방향성을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텍스트 자체"는 누군가 써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쭉. 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 게임은 매우 감동적이면서도 스마트한 결론을 찾는다. 앨런은 앨리스를 구하고 마을사람들을 구하고 어둠을 몰아낸다. 하지만 스스로는 어둠의 방에 남아 계속 소설을 써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이것이 전체 이야기의 결말이다.


작가를 이야기 속에 집어넣어버린 순간, 이야기의 세계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계속 글을 써야만 한다. 만약 작가가 이야기를 쓰길 멈춘다면 이야기의 세계 자체가 소멸할 것이고 다시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될 것이므로.


어쩌면 우리의 신도 앨런과 같은 운명에 처해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스스로 만들어낸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가능세계 속에 거하며, 빛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렇게 생각하면, 신은 어디있냐 직무유기다 비난한 것이 미안해진다.


이 게임은 삶에 대한 관찰자이자 동시에 행위자라는 주체의 분열적 속성에서 비롯된 인간 실존의 비극을 공포 게임이라는 장르에 담아낸 수작이다. 인간 실존의 비극이란 무엇인가? 관찰자로서의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주인이다. 그래서 의미의 해석에 있어 우리는 사실상 전지전능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세계 내의 등장인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미를 획득하는 데 있어서는 완전히 무력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미를 포기하는 한에서만 세계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단지 이것이 우리에게 허여된 것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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