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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별 Aug 05. 2023

부녀 간 마음의 벽을 허물었던
1997년 뿔라우 스리부

 나는 지금 캔버스에 26년전 먼 나라의 하늘을 그리고 있다.


 쁠라우 스리부(Pulu Seribu). 인도네시아어로 '천 개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자카르타 근교의 수많은 섬 리조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중 일본인이 섬을 사들여 개발했다는 빤타라(Pantara)섬이 아버지와 딸이 단둘이 여행할 장소로 선택되었다.     

 여행 전날인 1997년 10월 8일은 1년전 자카르타의 건축회사에 고액 연봉 CEO로 스카웃되셨던 아버지가 IMF라는 경제 위기 그에 따른 달러 환율 급상승으로 인해 원치 않게 회사를 나가시게 된 날이었다. 외국 회사로부터 화려한 경력을 인정받으신 덕분에 괜찮은 달러 연봉 뿐 아니라 집과 차, 스포츠 클럽 회원권 등 여러 혜택들을 제공받고 있었는데 1년만에 새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시 대학원 휴학생이었던 나는 아버지 덕에 외국 생활이라는 것을 해보면서 열대 지방의 나른함 속에 젖어 적당히 일하고 공부하고 친구들 사귀고 그림 그리며 살고 있었다. 늘 혜택을 많이 베푸신 고마운 아버지였지만 어릴 적 해외 건축 현장으로 다니시느라 성장하면서 많은 시간을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와의 생활은 어색하기만 했다.     

 회사에 대한 소식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고 며칠 전에 아버지의 새 직장에 제출할 이력서를 함께 교정보기도 했지만 막상 회사를 그만 두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아버지 앞에서 내색을 하지 못했지만 눈물이 났다. 1년쯤 함께 생활하면서 조금씩 가족애가 자란 건지 아버지 생각하면서 울었던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중동, 부산, 러시아 등등 수많은 현장을 고되게 다니시다가 이곳에 오셔서 성공의 꿈을 키우셨는데..     

26년 전 뿔라우 스리부 광고지가 일기장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께서 덤덤한 목소리로 함께 머리도 식히고 추억도 쌓을 겸 색다른 여행지에 가자고 제안하시며 팜플랫을 건네셨다.    


 






 다음 날 단촐한 짐만 챙겨 자카르타 안쫄(Ancol)의 마리나(Marina) 항구에서 출발하는 쾌속정에 올랐다. 처음에는 우리, 일본인 부부, 인도네시아인 부부 이렇게 6명만 타서 아버지께서 실망을 하셨다. 원래 여행은 사람 구경을 해야 재미있는 법이라고 하시면서 여행지에 사람이 너무 적으면 썰렁하다고 하셨다. 곧이어 중국의 단체 관광객들이 들이닥쳐 배가 왁자지껄해지니 여행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자카르타 해안을 떠나 1시간 10분여를 항해하자 인도네시아에 온 뒤 늘 보던 탁한 바다색이 점차 투명한 청록색으로 변화되었고 띄엄 띄엄 초록샘 섬들이 등장했다. 그 모습이 바다 위에 떠있는 초록색 해삼들 같아 진풍경이었다.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섬에 도착하니 처음 경험하는 것 투성이었다. 

 열대 지방 특유의 에메랄드빛 바다색과 원색에 가까운 꽃도 그날 처음 보았고 유난히 겁이 많은 내가 용감하게 첫 스노클링에 도전도 하게 되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독학으로 뛰어난 개헤엄 실력을 연마하신 아버지가 옆에서 같이 움직이신 덕분에 바다로 들어가는 사다리에 엉겨붙어 바들바들 떨던 나도 조금씩 바다 가운데로 나아갔다. 

인생 첫 스노클링.

‘어, 엽서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어, 초등학생 때 부산 수족관에 놀러가서 스케치했던 열대어들이다. 산호들이다.’ 입에는 뭔가를 물고 있으니 마음 속으로만 계속 감탄하며 두려움을 다 잊고 스노클링을 즐겼다. 물론 수영 잘하시는 아버지께서 내 팔을 잡고 더 먼 곳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해주신 덕에 잘 따라다니며 신기한 구경을 했다. 작은 돌섬 근처를 벗어나니 불가사리와 노란색, 남보라빛 색색의 산호들과 성게들, 급격한 경사면 아래의 짙은 푸른색 심연 또한 볼 수 있었다. 

 나의 첫 스노클링 경험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으며 여기에 첫 제트스키 경험까지 더해 오후에는 피로로 곯아떨어졌다. 




  작은 섬에 어스름이 깃들 무렵 바다를 보니 소멸되어가는 희미한 빛 속으로 웅크리고 있는 섬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맞은 편 섬에 도착하니 노란 불빛이 비추는 선착장 양 옆으로 투명한 바닷물 저 밑에 꼭꼭 숨어있는 동그랗고 검은 성게들의 반짝이는 눈들이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밤 산책 후 별다른 할 거리가 없는 숙소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앉아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했다. 26년 전 일이라 제대로 기억이 안 나서 당시 일기장을 들춰보니 놀랍게도 나는 가사를 기억하는 노래들을 불러드렸고 아버지는 경험했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셨다. (둘이 앉아 노래를 불렀다니 어지간히 소일거리가 없었구나 싶긴 한데..) 일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딸이 미술 전공을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고 돈을 많이 버시면 문화센터를 지어서 마음껏 전시하고 꿈을 펼치게 하고 싶다는 거창한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자카르타 근해 작은 섬의 잘 정돈된 리조트 주변은 고요한 열대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아버지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드릴 딸의 마음의 준비도 충분했기에 그러한 부녀간의 이례적인 추억이 생겼던 것 같다.     

 나의 이십 대 인도네시아 생활 중 뿔라우 스리부에서 아버지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절친처럼 대화를 나눴던 짧은 여행은 그 후 부녀 간의 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뿔라우 스리부에서의 기억을 끌어올리며 26년 전의 구름과 바다, 성게 등을 시각적으로 회상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에 아버지와의 전시를 계획하지 않았더라면 30, 40년이 지나도록 다시 수면 에 떠오르지 않았을 수 있는 추억이다. 10월 8일의 슬픔, 10월 9일과 10일의 부녀의 덤덤하지만 평화로운 여행 그 사이 사이에서 자라난 뒤늦은 아버지와의 정. 이러한 것들을 캔버스 붓질을 하는 동안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나의 기억은 뿔라우 스리부 그림 속에 어떠한 모습으로 담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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