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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별 Jun 24. 2024

아파트를 그린 그림

 작년에 구상해 놓은 전시 주제를 전제로 작품 준비를 조금씩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작품을 만들어놓고 어느 정도 양이 쌓이면 개인전을 하면 되겠구나 막연히 결정하고 운 좋으면(포트폴리오를 낸 갤러리에서 무료 전시를 열게 해주는 운을 말한다.) 실천하고는 했다. 직업인으로서 작품량을 어느 정도 채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 작업량과 작품 개수를 우선으로 고려하다 보니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전시 콘셉트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었다. 전시장 앞에 걸 플래카드 주문하기 전에 작품 제목 부랴부랴 짓고, 브로셔나 온라인 전시 홍보에 소개글 적어야 할 때 되어서 벼락치기로 콘셉트를 정리하는 등 이미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면서 뒤늦게 정할 때가 많았던 과거의 나의 행태를 반성하고 있다.

 이번에는 주제가 정해진 전시를 향해 작품을 구축하고 콘셉트를 만들어가는 전시 준비 방법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 기간을 1년 전에 정했고 함께 할 작가가 사는 지역과 가까운지 고려해야 해서 난생처음으로 갤러리 대관전을 하게 되었다. 함께 참여하는 작가는 바로 나의 아버지.

 올해 9월에 여는 2인 전에 아버지께서 이미 그려놓으신 수채화들을 나의 식으로 오마주하여 창작한 작품들을 걸어야 하는 상황은 나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비록 내가 외양이나 성향 등 닮은 점이 많은 딸이기는 하지만  아버지께서 그리신 도시 속에 깃든 아버지 특유의 정서는 나의 것과 너무도 다르다. 아버지와 나는 삼십 년 가까운 시간 차를 두고 다른 시대에 속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나도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맞추어진 정서를 소유했겠지만 십 대 후반부터 나의 정서와 가치관은 부모님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여 훨훨 날아갔을 것이며 중년인 현재 오롯이 다른 것이 되었다.


 전시 공간에 두 사람이 속한 도시인 송파구, 수지수 두 곳을 멀리서 본 모습을 그린 작품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사진을 찍으러 나갈 짬이 나지 않아 오랫동안 실행을 못 하고 있었다. 드디어 6월의 일요일 오후 두 개의 전망을 촬영하기 위해 나섰고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그림 소재를 얻어올 수 있었다.

 

나의 동네를 조망할 가까운 전망 타워를 방문했을 때는 잘 아는 동네이므로 금세 우리 아파트 방향을 찾아내어 촬영할 수 있었다. 하필 우리 집 방향 유리창만 먼지로 인해 뿌예진 관계로 전망 엘리베이터로 돌아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엘리베이터 유리로 보이는 풍경을 촬영했다.

올림픽 파크텔에서 본 송파구 아파트들

 아버지의 동네인 송파구 전망을 촬영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려웠다. 송파구의 가장 높은 장소인 롯데 타워 전망대를 찾아가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몇 년전 기회가 돼서 가본 경험에 의하면 정상의 전망대가 120층이라 풍경들이 지나치게 작게 보인다는 점이 문제였다. 차선책으로 그 옆에 있는 백화점에 가봤는데 문화 센터가 있는 꼭대기 층에 아예 창문이 없고 그냥 벽들만 있었다. 그 옆의 마트 건물은 옥상을 풋살장으로 개조하여 들어갈 수도 없었다. 송파구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으므로 방향을 돌려 올림픽 공원으로 갔고 올림픽 파크텔 건물의 객실 복도에서 드디어 올림픽 공원 끝자락과 송파구 아파트 단지들의 전망을 촬영할 수 있었다.


 

 두 장의 사진을 노트북에 담고 학교 미술실에서 50호 캔버스 위에 초기 작업을 했다.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공간적 배경인 서울 송파구의 풍경을 왼편에, 아버지를 떠나 주체적으로 자리 잡은 내 삶의 터전 경기도 수지 풍경을 오른편에 그리고 있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사실이겠지만, 왼쪽 사진이나 오른쪽 사진이나 네모난 아파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새가 닮아서 두 곳을 그렸는데도 한 장소 같고 이질감이 없었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네모 네모한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 익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란 존재가 실감되었다.


  향후 지속해 나갈 나의 작업 인생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남편이 작업할 때 쓰라고 선물한 휴대용 프로젝터. 기특하게 제 역할을 하여 커다란 캔버스에 오밀조밀한 도시 전망 사진을 무사히 스케치할 수 있었다.

 이 50호 작품은 학교 일을 마치고  짬 날 때마다 조금씩 작업하려고 계획 중이다.

 전시 공간의 가운데 위치시켜 같지만 다른 아버지와 딸이 그 다름을 인정한 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그림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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