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호수공원에는 정다운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가 있다.
딱 십 년 전 광교호수공원을 처음으로 방문했던 날, 내가 담임을 맡은 학생들과 맑은 하늘 아래 넓은 잔디밭에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누어 먹고 수건 돌리기를 하고 단체 사진을 찍은 다음 반장이 기획한 예술 행사인 시낭송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동료선생님들께서 아이들과 시낭송을 하고 왔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이냐며 되물으실 정도로 꽤 이색적인 이벤트였던 것 같다. 고등학생 1학년인 남녀 학생들은 반장이 미리 안내한 대로 각자 낭송할 시를 준비해서 둥글게 앉아있는 친구들의 가운데 서서 저마다 낭랑한 목소리로 읽었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까불까불한 한 남학생은 우리 반에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이 몸이 죽고 죽어'로 시작하는 정몽주의 단심가를 비장한 목소리로 낭송해서 아이들의 환호를 얻었고 이 공개적인 고백이 효과를 발휘해 그 여학생을 여자 친구로 얻었다. 나도 아이들 사이에 껴서 미리 준비한 시를 낭송하고 노래도 한 소절 불러주며 흥겨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일조했다.
아이들은 모둠별로 당시 유행하던 외모 몰아주기 놀이를 하며 사진을 찍다가 반장이 부르니 다시 모여 이번에는 짝을 바꾸어가며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술을 전공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반장답게 아이들이 감동을 느끼는 이벤트를 하고 싶었나 보다.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와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반장이 가진 리더십의 영향력 덕인지 아이들 모두 잘 따라 주었고 짝을 바꾸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중 우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광교호수공원에서의 그날의 학급 행사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어둑어둑해질 때 파하고 귀가하였다.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하루 온종일 반 아이들과 공원에서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시낭송도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특별했을까 생각해 본다. 집으로 돌아올 때 어두워진 광교호수공원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장소는 바로 이 정다운 다리인데 아치형의 다리 주변에 하얀 공처럼 생긴 등들이 연꽃들이 피어있는 듯 소원등이 떠 있는 듯 듬성듬성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 신비로워 보였다.
그날 이후로 광교호수공원이라는 장소에 호감을 갖게 되었고 일과 육아에 지친 워킹맘이 주말에 혼자 있고 싶을 때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찾아가서 산책하기도 했다. 호수를 빙 돌아 조성된 산책로가 걷기 좋게 되어 있어서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곤 했다.
운이 좋게도 작년부터 광교호수공원과 가까운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퇴근길에도 걸을 수 있는 환경이지만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 되다 보니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 학생들과 운동을 하느라 견학을 하느라 함께 걸을 일은 종종 생긴다. 미술 동아리를 지도하면서 학생들과 미술관 한 번 견학해야지 싶어서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보니 아트스페이스 광교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길래 학생들에게 얘기했더니 모두 환영했다. 광교호수공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공원 산책로를 걷는 일에 익숙해서인지 20-30분 정도는 힘들어하지 않고 거뜬히 걸었고 씩씩하게 아트스페이스 광교까지 함께 갔다. 공간이 시원스럽게 넓고 흥미 있는 현대 미술 기획전을 여는 이 미술관의 입구에는 최정화 작가의 대형 조형물인 거대한 달팽이와 떨어질 듯 공중에 매달린 코끼리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어린이 관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동물 친구들의 조형물을 설치하여 친숙함을 주는 듯하다.
아버지께서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라는 이름을 가진 아치형 다리를 그리신 그림이 있는데 아버지 그림 다시 그리기 작업을 하기 전에 나도 선암사 답사를 다녀와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갈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대신 그림의 구도와 유사하게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서의 소재를 찾아 그려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되어 아치형 다리를 물색하다 보니 십 년 전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정다운 다리가 떠올랐다. 지금은 친숙한 공간이 된 광교호수공원의 정다운 다리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찾아갈 수 있는 미술관인 아트스페이스 광교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고 두 장소를 결합시킨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보았다.
나의 그림 속 정다운 다리 위에는 대형 달팽이가 유유히 걸어가고 있고 떨어질 듯 매달린 코끼리 또한 등장하고 있으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주던 호수 위 등의 일부가 풍선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상상의 장면을 만들고 있다. 전체적인 색감을 다소 창백하게 만들어 현실 세계가 아님을 암시하고 붓터치를 강조하여 회화성 있는 작품으로 완성시키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