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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1 이 녀석아 너도 내 자식 같아서 그래

ㅡ 모의고사 후 연락 두절한 아들 때문에 가슴 철렁한 엄마들

by Anne

어제.

"엄마. 시험 끝났어. 너무 힘들어서 그냥 집에서 쉬고 싶어."

모의고사를 마치고 아들 녀석이 전화를 했다.


원래 모의고사 끝나고 오후에 학원수업이 남아있어서 저녁수업을 듣겠다고 했는데 피곤해서 그냥 집에 오고 싶다는 거다.

"거봐라. 엄마가 수업 힘들어서 못 들을 거라고 했지.

후문으로 데리러 갈게 기다려."


대치동 주말 수업이 두 타임 있는데 하나는 미루고 하나는 듣겠다길래 그냥 둘 다 빼고 시험 끝나고 집으로 오라고 분명 일러두었는데 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더니 몸이 따라주지 않았나 보다.

'그래. 의지는 기특하다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 일단 집에 가자. 엄마도 저녁픽업 쉬고 싶다.ㅎㅎ'


마침 학교 근처를 지내는 길이어서

시험을 막 끝나고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틈에

우리 아들도 얼굴이 노래져서는 손을 흔든다.


"아들 수고했어. 맘에 들게 잘 봤어?"

자세하게 꼬치꼬치 묻고 싶지만 덤덤한 척 간결하고 짧게 물었다.

방학 동안 열심히 했는데 이왕이믄 결과도 만족스러워야 힘이 날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도 포함해서.

"어. 집에 가서 채점해 보고."


집에 오자마자 손발만 대충 씻고

나는 답지를 아들 녀석은 시험지를 보며 답을 채점을 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잘 봤고

아들 녀석은

방학 동안 애쓴 보람이 있다며

안도의 한숨과 뭔가 한고비 넘겨 좀 살 것 같음으로 신이 났다.


갑자기 배가 고프고

오늘은 회전초밥이 먹고 싶다고 하길래

날도 덥고 밥 하기도 싫었는데 잘 됐다 싶어

모처럼 가족이 즐겁게 외식도 했다.


실컷 먹고 배 두들기며 잠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 학교 오픈채팅방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100개가 넘게 떠있다.

모의고사가 끝난 5시 이후 아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어느 학부모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시험이 어려웠고 방학 후 첫 시험이었고

내 아들도 그랬지만 내 아들의 친구들도 다들 잘 보았으면 좋았을. 잘 보고 싶은 시험이었다.


5시 이후 소식이 없어 계속 전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 아들이 어차피 핸드폰을 걷으니 집에 두고 갔고

핸드폰이 없는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길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학교 단톡에 애들이 시험 끝난 시각을 물으려 메시지를 띄운 이 후부터 오픈채팅방에 있던 수백 명의 학부모들은 내 아들의 친구의 행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7시쯤 마치는 시각을 물은 첫 메시지.

8시.

9시.

혹시 몇 반인지. 친구연락처를 아시는지 묻는 엄마들

뭐든 저희도 함께 찾는 거를 도와주겠다는 메시지.

10시.

혹시 찾으시면 늦게라도 꼭 메시지 남겨달라고.

11시.

12시....

나는 보고만 있고 아무 말도 적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시커멓게 깜깜해진 밤하늘.

저녁 배불리 먹고 이미 자고 있는 아들한테는 묻지도 못하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들 녀석을 나도 기다리고 있었다.


12시가 넘어 엄마들 걱정스러운 톡은 더 다급해지고

아들 녀석 친구도 연락처도 모르겠다고

혹시 학교자습실이나 독서실에 있나 가보시겠다고 하는 그 엄마의 메시지를 쳐다보며 다들 숨죽이고 있었다.

1시가 다 돼 가는 시각에

'아들의 생사를 확인했습니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라고 메시지가 떴다.

'아고 찾았구나! 다행이다. 여보. 찾았대!'

나도 남편도 걱정스러운 맘에 기다리던 메시지를 보고 자야지.. 하고 눕는데

다시 학교 오픈톡시 시끄럽다.

'다행이에요.'

'놀라셨죠?! 아이도 엄마도 괜찮으신 거죠?!'

'아이 다그치지 마세요. 혼내지 마세요.'

'돌아왔다니 다행이에요.'

'등짝 한 대만 때리고 안고 토닥여주세요'

.................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행여나 나쁜 마음을 먹었을까 봐

성적 그까짓 거 나쁘면 어때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이 시간을 지나고 있을지.

알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아는척했다가는 무너져버릴까 봐

조금만 더 견디면 돼...라고 밀고 밀었던

나와 같은 엄마들.


시험 좀 봤다고

기분팔랑 해서 외식하고

잠들어있는 아들을 보며

수능 때도 이렇게 잘 나오면 좋겠다고 하면서

저녁 내내 기분이 좋았던 우리 부부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몇 시간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내 친구의 아들이 잠시 연락이 되지 않았던 그 몇 시간이.

길고 길었다.

제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와 주기를.

내 아들의 친구들이. 내 아들이.

편히 잘 수 있기를.

아무 일 없는 하루가 되기를 맘속으로 기도하며 핸드폰 메시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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