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고 말았지.
긴긴 겨울방학이 나에게 준 일상.
3월도 다 지나가고 있다.
입학식 날 입겠다고
곱게 다려 옷걸이에 걸어뒀던 교복에
하얀 먼지가 내려앉았다.
먼지를 툭툭 털고.
먼지가 앉지 않도록 옷장 안에 넣어둬야겠다.
오늘은 뭐 먹지?
간식은?
아차.. 오늘 아이들이 해야 할 과제는 뭐였더라?
아침부터 부지런 떨지 않으면
밥 세끼 차려먹다 다시 자리에 눕게 될지 모른다.
정신 차리자.
전 세계를 꼼짝 못 하게 만든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나의 일상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초5학년, 중학교 1학년이 되어야 했을 아이들은
아직 긴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한 달 전쯤 아이들 개학에 맞춰 나도 이것저것 배워야겠다 싶어 문화센터에 등록했었는데, 국가 권고사항에 의해 모든 일정은 무기한으로 미루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늘 그렇지만...
ㅡ꼭 지금의 상황이어서 못 지키게 되었다고 하기엔 그동안 내가 지키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지만.
연초에 여러 가지 다짐들과 함께 조금은 무리다 싶게 세웠던 계획들은 아쉽게도 긴긴 겨울방학과 함께 묻혀버렸다.
사실 올해는 나를 돌아보고자 다짐하고 다짐하며 결심하고 결심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김이 빠진다.
그래 봐야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머 대단한 것도 아닐 터
좀 쉬어 가면 어때? 여태도 안 하고 살았는데. 허허
아침에 청소하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아이들 점심을 챙겨주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아파트 앞마당에 활짝 핀 목련이 보인다.
마스크를 쓴 여자 둘이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봄을 찍어보려 애를 쓰는 게 보였다. 엊그제 저녁에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만 해도 목련나무 끝에 보송보송 봉우리가 통통하게 차오르는 것 같았는데, 어쩜 하루 한 낮 볕이 저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구나.
설거지하다가 괜히 봄볕에 시샘이 났다.
온 나라가. 전 세계가.
발이 묶였는데,
봄은 오는구나.
봄이 왔구나.
아이들 겨울옷 정리해 넣어야 하는데.
침대 이불도 바꿔야지.
더위 무지 타는 남편 반팔 옷 꺼내야겠네.
선풍기는 어디다 넣어놨더라?
애들 실내화 빨아놨었나?
아이고 우리 뽀송이 외부기생충 약도 시작해야겠군.
'엄마'는 맘이 급해졌다.
밀리는 일에 괜히 짜증도 나고.
커피 한 잔 차분히 마실 시간 빼앗기고는 성질만 늘어간다.
긴긴 겨울방학이 바꿔놓은 내 소중한 봄은 이미 와버렸다.
이 시각도 병마와 애쓰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빼앗긴 봄 따위에 속상해 할 수 없지마는.
외출도 못하고 갑갑하다고 망아지처럼 뛰는 두 녀석들의 삼시 세끼에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녀석들 간식.
마냥 놀릴 수 없으니 머라도 해야지.
행여나 개학 후 적응이 힘들어 질까 노심초사하는 엄마 맘까지 보태면 맘이 너덜너덜해져 간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긴긴 겨울방학을 통해 돌아볼 틈 없이 바빴던 육아도 쉬어가는 느낌이랄까.
뜻하지 않았지만 3개월 가까이 아이들과 매일을 부딪히며 지내다 보니까 내가 잊고 있던 처음 엄마 시절이 떠올랐다.
요 녀석 웃나 안 웃나 고 찰나가 보고 싶어 고개 떨어져라 누워있는 아가를 보던 때가 있었지.
다 큰 줄 알았던 아들 녀석이
"엄마 힘들지?"
하며 자기 용돈으로 사다 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웃었다.
마냥 아기 같았던 딸이
"엄마 내가 할께"
세탁기의 빨래를 정리해주니 고마웠다.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오늘도 수고 많았네"
하며 등을 토닥여주니 즐거워 또 내일을 살 수 있다.
2020년 3월 어느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