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보약 지으러 갔다가 홧병 얻어온 아들
우리 집 장남 고사미가
아침마다 하도 헤롱헤롱 하길래
단골 한의원을 찾아갔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잘 봐주셨던 곳이라
"고3이라 힘들어서 왔구나" 하신다.
"아침에 몸이 무거워 못 일어나기도 하고.
밥도 잘 안 먹고 살도 빠지고 해서요. 보약이나 좀 해먹일까 해서요."
한약 먹기 싫다고 비죽거리며 따라오는 아들이 답하기도 전에 내가 막 먼저 대답을 하며 앉았다.
선생님은
"이제 고3이고 곧 어른인데 네가 니 증상에 대해 잘 설명해 줄 수 있지?! 선생님한테 네가 가장 힘든 부분을 얘기해 봐.
아침에 부지런하게 잘 일어나던 녀석이 언제부터 힘들었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지 얼마나 됐지?!"
아이의 눈을 맞추며 따스하게 물어주시는 선생님.
우리 집 고사미는
"선생님 제가요. 고3 되고 공부를 좀 시작하면서부터요."
라고 대답한다.
'이 놈 자식이
고등학교 1.2학년동안 실컷 놀다가 고3 돼서 공부한 거 자랑이냐?!'
나는 '안 들린다 안 들린다'
하고 옆에 잠자코 앉아있었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그래그래 고3 돼서 공부하면 다 힘들지. 다른데 불편한 곳은 없고?!"
"아 저 3학년 되면서 가슴통증이 있어요. 숨이 잘 안 쉬어져서 학원수업도중 집에 간 적도 몇 번 있고요."
아이가 수업도중 숨이 안 쉬어진다고 헐떡거리며 전화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위내시경도 찍고 했는데 별 이상이 없고 마르고 키 큰아이들에게 간혹 있을 수 있다는 기흉인가 싶어 병원에도 갔지만 문제가 없었다.
아들 녀석은 그때일을 선생님께 얘기하며 가슴을 짚었다.
"어디 한 번 볼까? 누워볼래?! 나한테 가슴과 배를 보여줄 수 있겠니? 어디 보자. 여기?! 여기?! 여긴 어때?"
아이를 눕히고 여기저기 꾹꾹 눌러가며 물으셨다.
아이는 이런저런 대답을 하고
"음. 어머니 심각한 건 아니지만 홧병이라고 아시죠?"
"네?! 홧병이라니요. 저는 아이 그렇게 잡지도 않았는데요. 얘 진짜 고등학교 즐겁게 잘 다녔는데요오오오!"
나는 순간 너무 억울했다.
아들녀석 '홧병'이라는 말에 내가 '홧병'이 걸릴 지경이다.
"아이고 어머니. 그냥 일종의 홧병같은거라구요. 요즘 아이들이 이런 증세를 많이 호소하는데 아이들이 발산하지 못하니까 몸이 말을 안 듣는 거죠...
나이 드신 어르신들 중에 진짜 심하신 분들은 가슴팍에 손만대도 엄청 아파하시고 힘들어하세요.
우리 짱구 녀석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 녀석 성격이 마구 발산하는 애는 아니라 이 녀석 축구로 풀어야 하는데 축구 못하고 지내서 그런가 봐요. 허허..."
하신다.
'그래. 맞네'
우리 집짱구 녀석 하늘에 구멍 난 듯 비가 쏟아지는 거 아니면 운동장에서 사는 녀석이다.
오죽하면 고3담임선생님께서
반아이들에게 짱구 녀석 공들고 다니고 차고 다니면 신고하라고 저 녀석 대학은 보내야지. 하셨겠냐고?!
축구 못해서 병이 났구나 이 녀석.
남들은 고3 되면 얼굴색이 말이 아닌데
우리 집 고사미는 축구를 못하고 실내에서 공부만 하느라
어릴 때 백옥 같았던 뽀얀 피부로 돌아오는 바람에 보는 사람들마다
"아이고 그 집아들 인물 났네. 고3 되더니 얼굴이 폈어. 그 집아들이 그렇게 피부가 하얬던가?"
하신다. 웃음으로 인사하지만 내속이 속이 아니었던 건 안 비밀이다.
진료를 마치고
"학원을 데려다주면서 오늘 진료 어땠어?
담주부터 약을 좀 먹으면서 기운내보자!"
" 엄마. 저 선생님 너무 나를 잘 알 아시는 것 같아. 나 가슴 아팠던 거 답답하고 걱정했는데 선생님 만나니까 좀 시원해. 나은 것 같아." 한다.
지도 힘들었겠지.
남들 하는 거 다 해보려고
옆에 친구들 죽어라 공부하고 있으니까
얼싸덜싸 그 자리에 앉아 공부하느라 애썼겠지.
저 나름대로는 놀고 싶은 거 참느라 몸이 무거워졌겠지.
엄마나 아빠 선생님은
'더해라 더해라. 좀만 참고 견뎌라.'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픈 곳을 따스하게 만져주시니
그게 위로가 되었나 보다.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어준 순간이었다.
그래그래.
애쓰고 있는 거 안다.
엄마도 고3엄마 하느라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시험 끝나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