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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9 병역준비안내문

ㅡ 아들이 군인아저씨

by Anne

지난여름, 우편함 속에서 낯선 흰 봉투 하나가 있었다. 요즘은 우편함에 관리비내역서나 과속딱지 말고는 올 게 없는데 무슨 편지지?!
겉면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병역 준비 안내문.”

순간, 손끝이 떨렸다.

짱구를 낳던 날.

머리가 엄청 크다고 자연분만이 힘들겠다고 하셨는데, 자연분만이 꼭 하고 싶었던 나는 열심히 운동하고 노력해서 2주 빨리 자연분만으로 아들을 만났다.
처음 내 품에 안긴 짱구는 머리만 엄청 컸지 팔다리에 살이 하나도 없이 겨우 3킬로를 넘겼다. 머리둘레로 체중을 예상한다는데 이 녀석 머리만 크고 2주 빨리 태어난 탓인지 몸에 살이 붙을 틈이 없었나 보다. 첫 아이어서 이쁜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막 태어난 모습이 어찌나 못난이 같던지..

그래도 엄마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집장남.
어느새 아이는 스무 살을 코앞에 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군인아저씨의 자격요건을 갖추었단다.

나는 왠지 손도 떨리고 마음 한구석이 썰렁한데, 짱구는 덤덤하다.


“엄마, 다들 받는 거야. 그냥 절차일 뿐이야.”


내 눈에는 아직도 철없고 어리숙한 아이인데, 우리 짱구 녀석 ‘청년’이 되어간다니.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던 첫 등굣길이 눈앞에 선한데, 언제 이렇게 컸냐. 나는 만감이 교차하고 뒤숭숭한데 짱구 녀석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예전엔 군인아저씨라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내 아들들이었구나. 이제 군복 입고 지나가는 애들 보면 그 앳된 얼굴에 다 내 아들 같다.

병역 준비 안내문은 나에게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나 보다.
잠시지만 아들을 키워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이별의 시간을 준비하게 하는 신호 같다 느껴졌다.

'슬슬 아들을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겠구나.
아이는 더 이상 품에 있으려 하지 않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였구나.

엄마는 여전히 네가 밤새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하며 이불을 덮어주고 있지만, 너는 그렇게 어른이 될 준비를 마쳐가네.'


아직 학생이고 이제 겨우 '병역준비안내문'에 별생각이 다 드는 거 보니 나는 T형인간에서 F형인간으로 변하고 있나 보다. 아니면 갱년기인가.ㅎㅎ


편지 받은 날 하룻저녁 뒤숭숭했는데, 아직 멀었으니까 하고 한쪽에 밀어뒀었다.

그런데 어제저녁 우리 앞집 현관에 군대에서 보낸 박스가 놓여있다.

앞집 학생이 군대를 갔나 보다.

훈련소 들어가고 며칠 후 상자 안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옷과신발 소지품들을 담아 돌려보낸다고 들었는데 바로 그 상자인가 보다.

내내 잘 있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앞집청년이 보낸 상자를 보는 순간 빵 터져서는 괜히 집에 들어와 눈물바람을 했다.

나참...

진짜 갱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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