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선선한 가을바람이 코끝에 닿으면
아이들은 주말이면 다들 각자스케줄하느라 종일 집에 없고 저녁 늦게나 들어온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주말저녁스케줄은 부부만의 시간이 되었다. 집 근처 카페도 가고 가고 싶었던 맛집도 다니고 했는데 좋은 것도 한두 번이라더니 몇 번 다니다 보니 매번 그렇게 주말을 보내는 것도 부담이다.
오늘은 유독 날씨도 좋고 어디 외곽으로 바람 좀 쐴까?! 하고 계획했는데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깜빡 졸고 눈을 떠보니 이미 해가져 버렸다. 한 명은 거실에서 티브이 보다가 한 명은 안방에서 핸드폰 보다가 잠이 든 거다.
둘 다 놀라서 잠에서 깨고는 어이가 없어서 한판 웃고는 '밤산책이나 갈까' 했다.
집에 더 있으면 축축 처질 것 같아서
얼렁 옷 챙겨 입고 둘이 나갔다. 집 앞 공원으로 나갔는데 밤공기가 시원하다 못해 차갑다.
정말 가을밤이다.
'긴팔을 챙겨 입고 나오길 잘했지 하마터면 추울뻔했네!'
공원엔 주말저녁에 산책 나온 나람들이 많았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러닝을 좋아한다더니 가벼운 운동복차림에 러닝 하는 커플도 많다.
밤이 늦은 시간인데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 반려견산책시키는 사람들, 다정하게 손잡고 걸으시는 노부부.
긴긴 여름을 잘 버틴 우리 모두에게 오늘의 시원한 밤공기는 너무 맛있었다. 코끝이 살짝 시릴 만큼 찬바람이 불었는데 1시간을 넘게 걸었는데도 땀도 안 나고 좋았다.
내가 너무피곤해서 먼저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해서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은 커피값도 안 쓰고 공짜로 시간 잘 보냈네."
"애들 둘 챙기느라 요즘 정신없지?! 우리 좀 만 더 잘 버텨보자. 애들 진짜 더 크면 우리 둘 뿐인 거 알지? 우리가 잘 지내야 애들도 잘 지내. 애들 얼렁얼렁 키워놓고 우리도 저렇게 손잡고 밤마다 산책하자."
남편은 우리 앞에 다정하게 손잡고 산책하시는 노부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이야기한다.
"저 노부부를 아까부터 봤는데 너무 좋아 보여. 저렇게 아까부터 손을 꼭 잡고 걸으시네.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너랑."
엄청 로맨틱한 말인데 여보.
나 갱년기인 거 같아. 여보가 가까이 붙어 걷는 것도 더운데 손까지 잡자고?! 지금은 좀 무리야. 한 발만 떨어져서 걸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