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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Oct 11. 2024

기술 발전이 만든 새로운 신뢰

2019년 '타다' 사건을 되짚어보다 - 책 <신뢰이동>

"신뢰는 기대치에 대한 확신이다" - 니클라스 루만 독일 사회학자


신뢰, 거의 모든 행동의 근간


진사회성 동물인 인간에게 신뢰는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신뢰는 거의 모든 행위와 관계와 거래의 근간을 이룬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쿠팡과 마켓컬리에서 주문한 과일과 야채를 집 안으로 들여온다. 얼른 출근 준비를 마치고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탑승한다.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직장 동료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한다.


이 아침 출근길에 얼마나 많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는가? 어제 주문한 과일과 야채가 오늘 아침 출근 전에 배달될 것이라는 기대,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왔을 때 모든 차들이 멈출 것이라는 기대, 버스가 정류장에 올 것이라는 기대, 버스 기사님이 안전 운전해주실 것이라는 기대, 버스가 노선을 지켜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는 기대, 카페에 키오스크에서 먼저 요금을 지불해도 커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 직장 동료나 출근길에 지나친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 모든 행동은 그리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지역적 신뢰의 시대


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살던 시대에 우리는 지역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왔다. 이런 소규모 집단에서는 관계가 중요한 사회였다. 철수네 빵집이 맛있는 빵을 만들면 모두가 철수네 빵집을 이용했고 훈이네 대장장이가 돈을 안 갚으면 금방 소문이 나 버린다. 사람들은 관계에 기반한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고, 그 대가로 공동체 안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약속이 주어졌다.


제도적 신뢰의 시대


그러나 서로가 추상적인 가치를 신뢰하게 되면서 인간의 집단은 던바의 수를 넘는 신뢰 규모를 창출했다. 예컨대 밀림에 조난당한 여러분의 수중에는 단돈 10,000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한 시간만 더 걸어가면 문명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만 당신은 이미 너무 지쳤다. 마침 바나나를 손에 쥐고 가는 원숭이를 보고 그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바나나 한 개의 가격은 1,000원이라 가정한다. 


"원숭아, 이 10,000원을 들고 저쪽으로 1시간만 가면 바나나 10개를 받을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지금 너무 배가 고프니 너의 손에 있는 바나나 한 개를 10,00에 살게"


그러나 원숭이는 말도 안 된다며 이 제안을 거절하고 밀림 속으로 쏙 사라진다.



원숭이는 참 바보다. 바나나 한 개를 주고 1시간만 달려가도 바나나 10개를 교환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실을 더욱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원숭이 쪽이다. 원숭이 입장에서 10,000원은 숫자와 그림이 그려진 종이에 불과하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종이 한 장과 바나나 한 개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바나나를 고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은 10,000이 적힌 종이에 있는 추상적인 가치를 믿는다. 이것이 바나나 10개의 교환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바나나를 파는 상인도 동일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 상인이 우리 동네의 철수나 훈이처럼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돈'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동일하다면 그게 누구든지 거래(협력)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유한 착각은 현실이 된다.


이것은 돈에 국한되지 않는다. 종교, 인권, 법, 국가, 각종 기관, 회사(법인人)도 마찬가지다. 이제 철수네 빵집이나 훈이네 대장장이가 아니라 정체성을 가진 상표와 로고로 표방된 삼성, 현대, 롯데와 같은 브랜드가 출현하기 시작한다. 신뢰가 계약과 법정, 상표 형태로 작동하는 제도적 신뢰의 시대이다.


분산적 신뢰의 시대


그런데 책 <신뢰 이동>의 저자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거대한 기관들의 신뢰가 해체되고 분산된 신뢰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2019년 '타다' 서비스 론칭과 관련된 사건은 정부 기관 vs 기업의 '신뢰'와 관련된 싸움이었다. 당시 소비자 리서치 결과 기존 택시에 가진 승객들의 불만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부르면 왔으면 좋겠다' '원하는 경로대로 갔으면 좋겠다.' '이동할 때 말을 안 시켰으면 좋겠다'. 


필자는 집이 기차역에서 집이 가까운데 짐 때문에 택시를 탔다가 가까운 거리를 듣고서는 굉장히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기사님을 보았다. 어떤 기사님은 본인의 정치적 의견을 열심히 피력하시기도 했다. '타다'라는 이름은 기존의 불편한 이동 서비스를 개선하여 정말 이동의 기본만 하자라는 뜻에서 이동의 '동사'를 내걸었다.


그러나 당시 여객운수 사업법 34조 2항에 따르면 렌터카 사업용 자동차에 운전기사를 알선해서는 안된다는 법령이 존재했다. 그러나 예외사항이 존재했는데 외국인, 장애인, 65세 이상인 사람, 그리고 승차정원이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인 승합자동차를 임차하는 사람이 있었다. '타다'는 이 조항을 근거로 하여 카니발을 이용해 운수사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타다'에 운전기사로 고용된 분들 중에는 VIP 수행기사 출신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운전을 안정감 있게 하고, 클래식과 방향제로 편안한 이동 경험을 선사했다. 이동 중에는 말을 걸지 않았고, 차량에는 전용 와이파이도 설치되어 있어 이동 중 업무를 보는 것도 가능했다. 기존 택시보다 요금은 조금 더 비쌌지만 한 번 사용해 본 이용자들은 서비스를 좋게 평가했다.


기존 택시 사업에는 사납금 제도가 있다. 택시 기사님들에게 일반적인 월급 제도로 운영되면, 회사 입장에서 기사가 도로에 나가 손님을 전혀 태울 의향 없이 돌아다니다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사납금 제도가 탄생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지극히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기사님들이 어떻게 업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타다'는 시간제를 기반으로 수수료를 책정하는 급여 체계를 설정한다. 2시간 동안 대기만 해도, 2시간 동안 손님 5명을 태워도 급여는 동일했다. '타다'를 이용한 이용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기사님들이 여유 있게 기다려주신 부분이 좋았다는 내용들이 있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필자에게 불편한 내색을 보였던 기존 택시 기사님은 아마도 사납금이라는 구조가 손님을 적게 태우고 짧게 태우는 경우에 본인이 져야 할 리스크가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택시 사업은 원래 국가에서 '인증'해준 기사들만 운영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들의 차를 타는 건 얼마나 큰 신뢰가 필요한 일인지를 생각해 보면, 국가의 인증은 일반 사용자들에게 안심하고 타도 된다는 일종의 신뢰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민간 기업에서도 사람들에게 이러한 신뢰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보다 편리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기존 기관의 신뢰를 뒤흔든 사건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기술 발전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자본이라는 가치로 이어질 수 있었다.(에어비앤비를 보라. 낯선 곳에 여행을 가서 낯선 사람의 집에 가서 잘 수 있는 신뢰를 어떻게 창출했을까?)


신뢰, 그 자체가 자본이 된다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의 인지 혁명 부분을 통해 실존하지 않는 '돈'이라는 가치를 동일하게 믿음으로써 자본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 <신뢰 이동>에서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신뢰' 그 자체가 자본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각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신뢰 자본을 제공하는지(중고나라와 당근마켓의 결정적인 차이는 매너 온도라는 신뢰를 이용자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의 관점에서 그들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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