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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Oct 14. 2024

화장실의 로댕

화장실에서 탄생한 개똥철학

(시작하기에 앞서 무언가를 드시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잠시 내려놓고 이 장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준비되셨나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 해보신 적이 있는가? '똥은 귀찮게 왜 싸게 되는걸까?' 

한 달이 넘도록 설사를 한 적이 있는 필자는 화장실 변기에서,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앉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너무나 귀찮고 괴로운 일. 심지어 냄새조차 좋지 않고 비위생적인 똥... 애시당초 내 몸에 100% 흡수되고 100% 필요한 것만 먹었더라면 배변이라는 작업은 동물에게 필요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금새 이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세상은 나에게 100% 알맞은 것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에 좋기만 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건 사실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장 폴 사르트르의 책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B와 D 사이에 있는 C이다."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선택(Choice)이라는 뜻이다. 삶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는 선택의 연속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는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이 있다. 삶 속에서 길게 보았을 때 세상은 나에게 온전히 얻기만 하는 것도, 반대로 온전히 잃게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제외하곤 말이다.


또한 '나에게 필요하다', '나에게 필요없다'라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똥이라는 것은 자신에게만 필요없는 물질이지 다른  이에겐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똥에 몰려드는 파리는 똥이 향기롭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게 몰려드는 것이 아닐까. 소를 키우는 사람은 쇠똥구리, 말을 키우는 사람은 말똥구리라 불렀던 곤충 또한 남의 똥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걸 보면 분명 그들에게는 필요한 영양분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똥 속에 알을 낳기도 한다. 똥을 먹는 그들도 물론 필요없는 성분을 걸러내어 배변을 한다.


코알라라는 동물은 똥에 대한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코알라는 지금은 죽은 언어가 된 오스트레일리아의 토착어 다룩어(darug)어 에서 '물을 먹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gula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러한 이름이 붙은 건 그들의 주식(主食) 때문이다. 코알라의 주식은 유칼립투스 잎이다. 이 잎에는 많은 양의 수분이 함유되어 있어 보통 코알라는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 아마도 다룩어를 사용했던 원주민들에게는 물을 먹는 모습을 거의 본 적 없는 동물이라 이렇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유칼립투스 잎은 먹이로 삼기 적합한 음식은 아니었다. 워낙 질긴데다 독성이 많은 유칼립투스 잎은 아무나 먹을 수 없었다. 코알라는 키가 큰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천적을 먹이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유칼립투스 잎을 주식으로 삼는 생존전략을 사용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았다. 대신 유칼립투스 잎을 소화하기 위해 몸집에 대비해 굉장히 긴, 2M에 달하는 맹장을 가지고 있다. 소화에도 시간이 걸려 성체 코알라가 하루 평균 900g의 잎을 먹는데, 이를 소화시키기 위해 하루에 20시간을 잔다고 한다.


갑자기 똥 이야기를 하다가 코알라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이들이 유칼립투스 잎을 소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흥미로운 이유식의 정체 때문이다. 성체 코알라의 장 속 미생물은 유칼립투스 잎을 소화할 수 있지만 코알라 새끼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새끼 코알라는 자신의 팔로 어미의 배를 자극하여 단단한 똥은 버리고 묽은 똥이 나오면 핥아먹는다. 유칼립투스 잎을 소화시킬 수 있는 미생물을 자신의 장내에 거둬들이기 위해서다. 어미의 똥은 장차 주식이 될 유칼립투스 잎을 소화하기 위해 먹는 일종의 성장과정(?) 중 하나인 것이다. 똥은 버려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사람도 이런 짓을 한다. 여러분은 대변은행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는가? 최초의 대변은행은 2012년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비영리기구 오픈바이옴(OpenBiome)이다. 대한민국에도 몇몇 병원과 벤쳐 기업의 형태로 대변 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이 곳은 실제로 사람의 똥을 보관하는 곳이다. 


개인 소장의 목적이냐고? 아니다. 코알라와 비슷한 이유로 사람의 똥에서 추출한 건강한 미생물들을 장 내에 이식하기 위함이다. 기증을 원하는 사람 100명 중 4명 정도만 통과될 만큼 건강한 사람들의 귀하디 귀한 황금똥만 보관될 수 있다. 세상에 나온 지 2시간 이내의 변에 글리세롤과 식염수를 특수 믹서로 섞어 고운 필터에 걸러 냉동 보관한다. 인간의 장에는 약 39조 마리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미생물이 균형을 이뤄가며 살아나는데 안좋은 식습관, 스트레스, 항생제 남용 등 다양한 이유를 통해 이 균형이 깨지면 대장염과 같은 증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생명에서 가장 중요한 면역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환자들에게 대변 은행은 건강한 미생물들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도대체 똥은 왜 싸는 거야라는 하찮은 질문으로부터 삶에 대한 선택의 철학, 쓸모의 철학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논했다. 그것도 변기에 앉아서 말이다. 세상에 온전히 좋기만 한것도, 온전히 나쁘기만 한것도 없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필자는 화장실에서의 이 사건을 '화장실의 로댕'이라 칭하며, 인생에 중요한 개똥철학으로 삼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의 행위가 인생에서 큰 가르침을 주는 순간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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