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va B Oct 16. 2024

여행에서 얻은 빚의 선순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는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해왔다. 인생은 여행, 인간을 여행자로 비유한다. 인생 또한 어디로부터인가 와서 여러가지 일을 겪다가 결국은 떠난다.

우리의 지구별 여행은 매우 취약한 형태로 시작한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데도 1년 가까이 걸리고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하려면 몇 년이 더 걸린다. 

세상 밖으로 나가 온전히 자기 몫을 할 때까지 우리의 보호자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며 대가 없는 환대를 기꺼이 베푼다. 성장한 우리는 나중에 찾아온 지구별 여행자에게 또다시 환대를 베푼다.


인생 중에서도 여행을 할 때가 있다. 낯선 곳을 찾았을 때도 종종 대가 없는 도움를 받았다. 

유럽 여행 중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종종 노숙자들이 돈을 구걸하러 왔다. 한 번은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무시하려 했는데 대뜸 어디를 가는거냐고 말을 걸었다. 목적지를 말했더니 그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이 바뀌었다고 알려주었다. 곧 기차를 탈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유도 모른 채 기차를 놓치고 역에서 잠을 자야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는 한인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 숙소에 머물렀다. 인터넷에서 치안 등급이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숙소가 있었다. 겁이 많은 필자는 저녁 전에는 꼭 돌아왔다. 그런데 그 숙소에서 만난 누나는 당차게 우리를 끌고 나가 파리의 밤거리에서 맛있는 밥을 사 주었다. 얻어먹을 수만은 없다고 말하자 너희가 나중에 똑같이 여행을 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밥을 사 주라고 말했다.

필자는 유럽 여행 중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들고 다녔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때때로 방문한 도시의 도서관에 들려 책을 틈틈히 읽었다. 필자에게 밥을 사주었던 누나의 말과 비슷한 말이 책에 담겨 있었다.


이런 환대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 언젠가 읽은 여행기에서 나는 답을 발견했다. 

저자는 북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그제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당황하는 그녀 대신 현지인 할머니가 버스 요금을 내주었다.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기차를 타는 곳이 바뀌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던 아저씨도, 무서웠던 파리 밤거리에서 밥을 사주었던 누나도 어쩌면 필자보다 앞선 여행에서 누군가의 대가 없는 환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얻은 빚은 은행에서 얻은 빚과는 달랐다. 빌린 사람에게 갚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갚는 것이었다. 여행의 빚은 그렇게 돌고돌며 뻗어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화장실의 로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