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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Oct 18. 2024

모래로 만들어진 세상(0) - 모래없이 살 수 없다

책 【모래가 만든 세계】

모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초이며, 일상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모래는 거의 매 순간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 우리는 모래 안에서 일어나고, 모래 위에서 움직이며 , 모래를 이용한 기술을 통해 서로 소통한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 눈을 뜬 공간도 그 일부가 모래로 지어진 곳일 가능성이 크다. 벽돌,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라 하더라도 그 기초는 대부분 콘크리트, 즉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벽면에 치장 벽토(stucco)가 발라져 있다면 그것도 모래다.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불을 켠 순간, 모래로 만들어진 세면대와 유리에 빚이 비친다. 치약 속 실리카는 미세한 모래 입자로, 치석을 제거하는 연마제로 사용된다. 샴푸에 들어간 실리콘은 머릿결에 윤기를 더해준다. 씻고 나와 잠옷을 벗고 속옷을 갈아입는다. 속옷이 줄줄 흘러내리지 않는 것도 모두 실리콘 밴드 덕분이다. 셔츠 옷감에 들어간 실리콘은 구김을 줄여준다. 이런 실리콘 역시 모래에서 추출한 합성물이다.


출근길에 오르는 순간에도 모래는 함께한다. 우리가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도 모래로 만들어졌다. 휘발유로 움직이는 차를 탔다면, 물에 산업용 모래를 넣어 수압파쇄법으로 채굴한 셰일 가스로 얻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파란색 창문이 수없이 달려있는 회사를 바라보면 이곳도 얼마나 많은 모래가 들어갔을지 상상해본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움직이는 반도체는 고순도 석영으로 이루어진 희귀한 모래로 만들어진다.


모래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만약 모래가 없었다면 인류의 현대 문명은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래는 한눈에 보기에는 단순한 알갱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특성과 용도가 숨겨져 있다. 단단한 모래, 보드라운 모래, 둥근 모래, 각진 모래, 색이 있는 모래, 순도가 높은 모래 등 모래의 종류는 매우 다채롭다. 각각의 모래는 그 특성에 따라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


건설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모래는 각이 져 있고 단단하여 주로 콘크리트용으로 사용되며, 이는 마치 보병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모래는 주로 석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른 광물과 혼합되어 다양한 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자갈과 함께 섞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골재'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한 보병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모래는 더욱 특수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바다에서 채취한 바닷모래는 염분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해 추가 비용이 들긴 하지만, 특정 작업에는 최적의 자재다. 알갱이가 균일해 인공 섬을 만들거나 특정 건축 프로젝트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또한, 순도 높은 규사(硅砂)는 더욱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는 특수 모래로, 유리 제작이나 금속 주물 공정 등에서 사용된다. 특히, 첨단 장비나 반도체 칩 제조에 필요한 고순도 석영 모래는 최정예 부대에 비유될 만큼 중요하고 희귀한 모래다.


사막의 모래는 대부분 너무 둥글어서 건설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이는 바람의 지속적인 충격에 의해 모서리가 닳아 둥글게 변하기 때문이다. 각진 물체가 결합력이 강한 것처럼, 각진 모래가 건설에 더 적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와 같이 모래가 풍부할 것 같은 나라는 모래 수입국이다.


모래는 우리가 끝없이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한한 자원이다. 모래는 물과 공기를 제외하고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자원 중 하나이며, 매년 약 500억 톤의 모래와 자갈이 사용된다. 이는 캘리포니아 주 전체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세계 곳곳에서는 모래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2008년 자메이카에서 모래 도둑들이 아름다운 해변의 400미터 구간을 없앤 사건이 발생했다. 싱가포르의 간척 사업은 인도네시아의 섬을 파괴하는 주요 원인으로, 2005년 이후 최소 24개의 섬이 사라졌다. 이 섬들은 모래가 싱가포르로 수출되면서 자연스레 소멸되었고, 이로 인해 주변 국가들은 싱가포르에 모래 수출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바다와 강 속 모래 역시 안전하지 않다. 준설선들은 바다 밑에서 수백만 톤의 모래를 끌어올리고 있으며, 일본은 매년 약 4,000만 세제곱미터의 모래를 바다 밑에서 채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해양 생태계는 큰 피해를 입는다. 바다 밑의 모래 채취는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며, 떠오른 퇴적물이 해양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 특히 플로리다의 산호초와 맹그로브 숲, 멸종 위기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강바닥의 모래는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모래가 사라지면 대수층이 줄어들어 식수 고갈을 초래할 수 있다. 이탈리아와 인도 남부에서는 이미 모래 채취로 인해 심각한 물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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