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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Oct 21. 2024

초월적 존재의 관점

모순을 바라보는 생각법

(아래 글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하이즈먼 리포트, 5. 인류의 진화

저서 『인간과 진화』에서 형질 인류학의 시점으로 인류 진화에 대해 거론한 파리 대학 교수 조르주 올리비에의 말을 빌린다면 "미래의 인간은 머지않아 불시에 온다."는 얘기였다. 인류의 진화는 내일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간은 대뇌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지적 능력을 올리비 에는 이렇게 상상했다. '제 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 할 수 있는 점, 제 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


미국 번즈 대통령은 아프리카 대륙 콩고 공화국의 밀림 속에 사는 피그미 족에서 새로운 종족의 출현을 보고받는다. 그들은 암살 목표가 된 세 살배기 아이에게 '초월적인 지성'이라는 뜻의 누스(Nous)라는 이름을 붙이고 누스를 말살하는 작전을 '네메시스'라 명명했다. 하늘의 천벌을 의인화한 그리스 신화 속 여신의 이름이며, 공룡을 멸망시켰다는 거대 운석의 이름도 같은 이름이 붙어 있었다.


누스는 인후두가 덜 발달하여 목소리로 대화하지는 못했지만 영어를 2주 만에 읽고 쓰는 것까지 배워버린다. 컴퓨터 타자를 통해 복잡한 정치, 경제의 문제에 대해 논할 수 있고 40자리 합성수도 5초 만의 암산으로 두 가지 소수로 분리해내는 천재적인 면을 보인다. 미국 정부의 최강 강도 RSA암호를 해독하고 위성을 해킹한다. 소설 속에서 누스에 의해 미국 부통령이 사망하는 사건에서는 마치 중국이 이런 일을 꾸민 것처럼 명백한 증거를 남겨두기도 한다.


네메시스 작전에 투입된 극비리에 4명의 특수 임무 팀으로 이루어진 요원들에게 피그미족 제거와 함께 묘한 임무를 전달받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지시를 전달한다.
만약 임무 수행 중에 본 적 없는 생물과 조우하면 제일 먼저 사살하라."


특수 요원들이 임무를 위해 콩고 밀림을 헤쳐 나가던 중 한 원숭이 집단이 침팬지 집단을 공격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원숭이들은 유아 침팬지의 양발을 쥐고 흔들더니 팔을 찢어 먹기까지 했다. 불편한 장면을 보다못한 한 요원이 대장 원숭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실제)제인 구달은 한 침팬지 집단의 수컷들이 차례차례 이웃 집단을 살해하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한 집단의 침팬지에게 그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침팬지를 절멸시키는 수단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단추 버튼 하나로 상대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없애버릴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 미국 번즈 대통령에 대한 네메시스 작전 책임자는 이런 소회를 밝힌다.


여태껏 그는 전쟁의 억지력에는 정치적 지도자의 광기가 불가결하다고 생각했다. 핵미사일을 아무리 많이 보유하고 있어도 그것을 위협적으로 보이게 하려면 스위치를 누를 만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접한 미군 최고사령관은 보통 사람이었다. 번즈는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전형이었다. 그럴 만한 지위만 주어지면 누구든 핵미사일 발사 버튼에 손을 얹을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 간접적이라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지도자가 실제로 전쟁을 이끌고 있었다.


다시 비밀 요원들이 원숭이의 만행을 참지 못하고 총알을 갈겨버린 장면으로 회귀해보자. 현대 인류를 초월한 누스의 입장에서 이 장면은 어떻게 해석될까? 인간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소설 속 미국 번즈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10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누스가 있는 콩고 공화국 내에서도 수많은 내전이 일어나고 있다. 사피엔스는 관용을 베푸는 동물과 거리는 멀었다. 피부색, 언어, 종교의 차이만으로도 해당 집단을 몰살시킬 동기를 만들어내는 존재였다. 사실 요원들의 임무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종을 말살시키는 제노사이드였다.


원숭이보다 우월한 인간이 원숭이의 잔학한 행동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벌을 내렸다. 원숭이보다 인간이 우월한 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저 그들보다 뇌를 훨씬 더 잘 사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훨씬 더 훌륭한 뇌의 처리방식(혹은 뇌가 아니더라도)을 가진 생명체가 창조된다면, 그는 인간이 원숭이보다 우월하듯 인간보다 우월하지 않을까?


인간과 그 집단은 진정 걸어다니는 모순덩어리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인 동물 중 하나이다. 일대일 결투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게 이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우리와 거의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침팬지는 한 손이나 한 발로 온몸을 지탱하며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세상에서 가장 근육을 많이 키운 인간조차 운동하지 않은 고릴라의 근육량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 명의 인간은 생태계의 서열에서 그리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협력을 통해 번성해왔다. 예를 들어, 수천 마리의 침팬지를 광화문 광장이나 국회에 집어넣으면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곳에서 대규모의 대중적 행사를 개최하고, 5천만 명이 따르는 정치적 제도를 만들기도 한다. 


협력할 때 비로서 강인한 힘을 낼 수 있기에 인류는 사회적 고립에 대한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개인은 집단에 순응하고자 하고 집단에 유리한 측면만 기억한다. 미국인은 알라모 요새(사망자 200명)와 전함 메인호(사망자 260명), 그리고 진주만(사망자 2,600명)에서의 패배에 따른 굴욕적인 분노를 잊지 않지만, 그들이 죽인 원주민 수는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가끔 이러한 모순들을 보기 위해 누스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의 관점을 떠올린다. 비밀 요원은 아카리(누스의 진짜 이름)를 처음 마주하고 그의 능력을 확인했을 때 자신들이 원숭이를 쏴 죽인 사건을 회상했다. 초월적인 존재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보다 우월한 지성체에게 똑같은 취급을 당했을 때 우리는 과연 그 취급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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