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의 역설

1992년 북태평양 인근의 바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던 화물선이 사나운 폭풍을 만나 여러 컨테이너가 바다에 빠졌다. 그 컨테이너 중에는 목욕 장난감 28,800개가 바다로 풀려나갔다. 구멍이 없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노란 오리, 빨간 비버, 초록 개구리, 파란 거북이 장난감들은 욕조 밖의 망망대해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윤리적인 이유로 과학자들은 바다에 수 만개의 장난감을 버릴 수 없었지만, 우연히 버려진 장난감들을 통해 이들의 여정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난 해 알래스카 해안에서 오리 장난감이 발견된다. 1995년 일본까지 갔다가 2000년에는 북극해에서 얼음에 갇힌 오리가 발견된다. 얼음이 녹아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여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대서양 지역에서도 오리가 발견된다. 남미, 호주 같은 곳에서도 오리는 발견되었다. 

그들의 긴 여정은 바다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플라스틱은 질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거센 파도와 염분에도 부식되지 않고,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일교차에서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지구의 바다에는 11개의 환류가 존재하는데, 아직 몇몇 오리들은 그 안에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곳에 갇힌 건 오리 장난감뿐만이 아니다. 바다에 버려진 여러 쓰레기들이 모여 섬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 면적의 15배가 넘는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 Great Pacific Garbage Patch)에는 썩지 않은 비닐을 포함한 수많은 플라스틱류 쓰레기들이 존재하고 있다.

비닐은 분해되는데 최장 1000년이 소요된다. 1997년 태평양에 거대 쓰레기 지대를 발견한 이후 비닐 쓰레기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방글라데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한다. 이는 1988년, 1998년 홍수로 인해 국가 영토의 2/3가 물에 잠겼는데, 비닐봉지가 하수구를 막아 피해를 더 키웠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7년 케냐는 비닐봉지 금지법을 제정했는데, 이를 위반할 시 징역 4년 또는 한화로 약 4000만 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환경오염의 원인이 돼버린 비닐봉지는 사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태어났다. 비닐봉지가 탄생하기 전인 1950년대 사람들은 매장에서 산 물건들을 종이백에 담았다. 스웨덴의 한 공학자는 쉽게 찢어지고 젖어 몇 번 쓰지 못하고 버려지는 종이백을 위해 너무 많은 나무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름은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튼튼하고 가벼운 비닐 쇼핑팩을 발명하여 1960년 특허를 받았다. 비닐봉지는 정유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원료로 하지만 종이백은 수많은 나무를 베어야만 했다. 캘리포니아 훔불트 주립대 연구팀에 따르면 비닐봉지보다 종이봉투를 생산할 때 26배 많은 물이 필요하고,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 발생량과 수질 오염도가 더 높다고 발표했다. 또한 비닐봉지보다 종이봉투가 더 무겁기 때문에 운송 과정에서도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의 의도는 비닐봉지를 일상생활에서 반복해 재사용한다면 환경에 더 이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의 의도와 달리 비닐봉지를 일회용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닐봉지를 줄이기 위해 에코백이나 텀블러,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종이백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 보호 효과를 보려면 에코백의 경우 최소 7천 번 이상, 텀블러의 경우 15회 이상 사용해야 한다. 종이백의 경우는 최소 3번 이상 재사용되어야 한다.

오늘도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비닐을 바라보며 BBC 영상에 나온 툴린의 아들 라울의 말을 되새겨 본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비닐봉지를 한 번만 쓴다는 걸 알면 이상하다고 하실걸요. 그는 항상 비닐봉지를 접은 채로 주머니에 가지고 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