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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Oct 07. 2024

신화가 되버린 실험의 이면들

스탠리 밀그램 복종 실험, 마시멜로 실험 그리고 매슬로우 욕구 피라미드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필자에겐 대표적으로 심리학 실험이 그러한데, 보통 책에서 이런 실험을 설명하는 구간이 나오면 빠르게 넘긴다. 실험의 내용은 몇 번이고 봤기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이따금씩 이런 실험들이 이야기하는 진부한 결론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이 있다.


(책 : <아이덴티티>, <평균의 종말>,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강인함의 힘> 참고)


"유명한 연구일수록 사람들이 실제로 그 원문을 읽을 가능성은 더 적다." - <아이덴티티> 中




복종 실험의 이면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1961년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진행된 사회심리학 실험으로, 권위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연구한 대표적인 실험이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선생' 역할을 부여받았고, 그들은 '학생' 역할의 사람(사실은 연구팀의 일원)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주도록 지시받았다. 충격의 강도는 15V에서 시작해 최대 450V까지 증가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충격이 매우 고통스럽거나 심지어 치명적일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전기 충격은 실제로 가해지지 않았다. 학생 역할의 사람은 가짜로 고통을 호소하거나 아프다고 외쳤다.


밀그램의 실험은 권위자의 지시가 있을 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본인의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서 심각한 고통을 준다고 믿는 전기 충격을 계속 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65%의 참가자들이 최대 450V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으며, 이는 참가자들이 권위자에게 얼마나 쉽게 복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나 아렌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에 책임이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서술한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이 실험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책 <아이덴티티> 저자 중 한 명인 도미닉 패커는 이 실험의 원본을 직접 읽어보며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그는 특히 권위에 복종하지 않은 참가자들에 관심을 가졌다. 각 실험에서 '선생' 역할인 진짜 참가자들은 권위에 불복종할 기회가 29번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복종하는 시기는 무작위적이 아니라 150V 전기 충격을 가하는 특정 시점에 몰려 있었다. 150V가 135V, 165V와 달랐던 점은 학습자(가짜 참가자)가 선생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풀어달라고 '요청'한 순간이었다. 실험이 진행되며 비슷한 요청이 있었지만 복종한 선생 참가자들에게 150V의 처음 요청만큼의 효과를 내진 못했다.


이 내용이 흥미로운 것은 전기 충격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생 참가자들의 불복종한 요인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주원인이 아님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면 전기 충격의 전압이 높아짐으로써 불복종률이 높아져야 한다. 고통의 공감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결정을 좌우했을까? 150V에서 학생 참가자가 첫 요청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들이 실험자 또는 학습자와의 공유된 정체성을 느낀 것이 그들의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참가자들이 실험자의 편에 설 지 학습자의 편에 설 지를 선택해야 했던 시점이 바로 150V 지점이었다.


마시멜로 실험의 이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들이 후에 사회적인 성공을 이뤄낸 비율이 높다는 마시멜로 실험은 어떨까? 성공에 필요한 능력에 자제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마시멜로 실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제력'에 대한 교훈은 단지 일면일 뿐이다. 마시멜로 후속 실험에서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준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실험도 있었다. 이후 동일한 아이들에게 동일한 실험을 했을 때, 아이들은 참지 않고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과학자인 셀레스트 키드는 노숙자 쉼터에서 일했는데 그곳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사탕을 쥐어주면 주변 아이들에게 뺏길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이때 가장 최선의 방법은 바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키드는 이 아이들에게 동일한 마시멜로 실험을 하면 바로 먹어버리는 선택을 했을 것이라 말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신뢰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제력은 유지되기 힘들며, 주변에 처한 환경에 따라 행동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마시멜로 실험을 진행한 월터 미셸의 공동 연구자 유이치 쇼다는 마시멜로를 그냥 먹은 아이들도 별 탈 없이 잘 자랐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기도 했다.


마시멜로 욕구 피라미드의 이면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중요도에 따라 계층을 이루며, 하위 단계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상위 단계의 욕구가 나타나게 된다. 


1단계 생리적 욕구(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인 음식, 물, 수면, 산소, 성을 포함), 

2단계 안전의 욕구(신체적, 정신적 안정을 추구하는 욕구), 

3단계 소속과 애정의 욕구(대인관계와 소속감에 관한 욕구), 

4단계 존중의 욕구(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마지막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개인의 성장과 자아 완성을 추구하는 단계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1970년도의 매슬로우 일기장을 보면 이 피라미드의 모형은 그가 의도했던 바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는 자아실현 욕구를 포함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너무 엉성해서 비판받을 여지가 다분하다." 


그는 최종적인 단계로써 자아실현의 욕구는 너무도 개인적인 차원에 집중한다고 보았다. 그는 욕구의 정점에는 개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초월하는 욕구가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종 단계에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자기 초월의 욕구를 배치했었다.




"연구는 여러 번 전해지면서 신화처럼 바뀐다. 주요 연구 결과는 상세히 설명되지만, 결정적인 세부 사항과 상황은 서서히 사라져 미래 세대에게 잊힌다." - <아이덴티티> 中


동전에는 앞면, 뒷면, 그리고 옆면이라는 서로 다른 이면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아는 심리학 실험이나 이론들도 한쪽 면만 볼 때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다양한 해석과 복잡한 요소들이 숨어있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마시멜로 실험,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 모두 그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면을 살펴보면, 연구나 실험의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면을 살펴보면 또 다른 진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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