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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Oct 04. 2024

불편함은 관성에서 온다

예술이 해주는 역할

예술에 조예가 1도 없는 필자에게도 현대 미술은 예술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 어이가 없었고 화가 났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전혀 다를 것 없는 남성 소변기에 자신의 사인을 붙인 것 밖에 없다.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였다. 전시 중에 바나나가 계속해서 거뭇하게 익어갈 때면 다른 바나나를 가져와 테이프로 다시 붙였다. 이 바나나는 한화로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게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가치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반면 통쾌한 실험도 있었다. 얼굴 없는 벽화 작가인 뱅크시는 길거리에 한 노인을 판매원으로 내세워 자신의 서명이 담긴 작품을 판매했다. 프로젝트 명 Better Out Than in(바깥이 안보다 낫다)였다. 오후 6시까지 장사를 했지만 행인들은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루에 판매된 그림은 8점, 총매출은 420달러였다. 똑같은 그림이 갤러리에 걸려 있었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가치를 매겼을 텐데 말이다. 누구나 가치를 알아줄 것만 같은 고귀한 그림이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 뜨끔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다니엘 아샴의 작품은 만약 '현재가 미래에 발굴된다면'이란 발상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 문화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동일한 과거로 보이지만, 피라미드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보다도 1000년 전 사람들이 만든 유물이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물건이 1000~2000년 후에 발굴된다면 동일한 과거처럼 보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다스베이더스, 농구공, 그리고 코카콜라가 한 자리에 전시된 모습이 새롭다.



전반적으로 공간 자체가 발굴 현장과 같은 느낌으로 꾸며져 있다.


실제 발굴 현장과 같은 전시물에는 턴테이블이나 라디오는 그렇다 쳐도 컴퓨터나 태블릿, 게임기가 발굴된 모습은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포켓몬 카드가 미래에 발굴된다는 생각도 흥미롭다. 세월의 흔적을 표현하기 위해 곳곳에 광물이 피어나있는 피카츄 카드와 뮤 포켓몬 카드와 포켓몬 동상들. 만약 인간이 멸종된 뒤 아주 먼 훗날, 지성을 가진 또 다른 생명체가 이것을 발굴했을 때 지구라는 별에 실제로 이런 동물이 살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기발한 발상이었다.


문득 예술의 역할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편함이란 감정은 관성에서 온다. 예술의 '예'도 모르는 필자이지만 뒤샹의 샘이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에서 느낀 불편함은 예술이란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관성에서 왔다. 뱅크시의 Better Out Than in 프로젝트에서 필자가 느낀 뜨끔함은 필자 역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이해하지 못할 그림에 뭔지 모를 존경심을 가지고 바라본 것과 파리 길거리에 걸린 그림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던 모습이 겹쳤던 것에서 왔다. 다니엘 아샴의 전시에서 느낀 이질감은 고대 그리스 입장에서도 피라미드는 과거의 유물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현재는 특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부터 왔다.


예술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성에 문화적인 방식으로 불편함을 던진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온전히 관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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