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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Oct 28. 2024

순진한 정보관에 반대합니다

유발 하라리 <넥서스>

1999년 12월, 20세기를 마감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선정된 기술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었다. 당시 필경사들이 양피지에 성경책 1부를 필사하는 데는 3년이 걸렸다. 그 외에도 가죽표지를 만드는 갖바치, 책 곳곳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는 삽화가, 책 모서리에 경첩을 다는 대장장이, 책 표지에 귀금속을 다는 세공사가 동원되어 책을 만들었다. 독일의 금 세공업자였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68)는 금덩어리로 동전을 만들어내는 방식에서 착안하여 낱개로 움직일 수 있는 금속활자를 이용해 종이에 글자를 찍어내는 인쇄기를 발명했다. 이로 인해 당시 시가로 2,000만 원 정도 하던 책값은 7만 원 정도로 폭락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명실상부 소수가 독점하던 정보를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대중화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을까?


순진한 정보관이란 우리가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 대부분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면 해결된다고 본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정보가 많을수록 정확성이 높아진다는 관념이다. 순진한 정보관에서 보았을 때 구텐베르크 인쇄기의 발명으로 촉발된 종교혁명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역사적 승리였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공공연하게 죄를 사하여 주는 면죄부를 판매했다. 심지어 교황인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 건축 비용 마련을 위해 면죄부 판매를 확대하기도 했다. 교황보다 성경의 권위가 중요하며 면죄부가 아닌 진정한 믿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통해 단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질 수 있었다. 정보가 손쉽게 대중화되자 사람들은 관행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토론을 하게 했으며,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순진한 정보관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다른 사실들이 존재한다. 크라머라는 인물은 근대 초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마녀의 망치>라는 책을 출간한다. 이 책은 정직한 기독교인들이 마녀를 색출하고 물리칠 수 있는 자세한 방법을 소개한 책이었다. 그는 마녀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어떤 잔인한 고문도 사용 가능하며, 그들에게 내려질 처벌은 오직 처형뿐이라 말했다. 1486년에 처음 저술되어 1500년까지 8판을 찍었고 교황의 승인까지 받았다. 1520년까지 추가로 5판, 1670년까지 다시 16판을 더 찍었으며, 여러 번역서가 제공되었다. 근대 초 유럽인들 중 그 누구도 마녀와 계약을 하거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인쇄술의 힘을 빌려 대중들에게 풀린 <마녀의 망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증거들을 가지고 서로를 마녀라고 비난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16~17세기 4~5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마녀로 고발되어 고문을 받거나 처형당했다.


인쇄술의 등장이 마녀 사냥의 광풍을 초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보의 대중화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대중화하는데도 기여했다. 인쇄술이 충실히 수행한 역할은 단지 텍스트를 복사한 것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진실된 정보만이 전달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주의 중심이 인류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인류 역사의 큰 진보적 발전을 가져온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은 베스트셀러였던 <마녀의 망치>와 대비되는 역대급 워스트셀러였다. 1543년 출간된 초판 400권은 다 팔리지도 않았으며, 비슷한 인쇄부수였던 2판은 1566년에야 출판되었고, 3판은 1617년에서야 나왔다.


정보가 많이 제공될수록 사람들이 진실에 근접할 것이라는 순진한 정보관의 오해이다. 정보는 꼭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1년 기준 전 세계 점성술 시장의 규모는 128억 달러(한화 약 17조 7000억)에 달한다. 인류의 우주관을 바꾼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부터 약 500년 후인 지금, 세상에는 엄청난 우주 관련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연인과의 별점과 하루 별자리 운세를 믿기도 한다. 


정보의 역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시도를 하는 정보도 분명 존재하지만, 정보의 총제적 역할은 각 개개인의 연결이다. 정보는 그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왔고, 이로부터 발현된 대규모 협력 네트워크는 인류를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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