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스스로 생각했던 이상과 괴리가 있다는 이유로 불평과 불만만을 가지고 아까운 시간을 날려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잘한 것이 딱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독서였고, 두 번째는 메모였다.
독서를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동기는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00책에서 읽은 건데~' 하며 운을 띄우는 사람들이 멋있어보였다. 단순하고 원초적인 이유였지만, 위대한 일들이 꼭 위대한 동기로 시작되지만은 않는다. 책 <라틴어 수업>에서는 이를 '위대한 유치함'이라고 칭했다.
메모를 하게 된 이유는 대학교에서 진행한 외부 강연에서 본 한 강사의 습관이었다. 당시 Workflowy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할 강연 내용이나, 업무내용,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을 텍스트 형태로 저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폴더 구조로 텍스트를 저장할 수 있는 툴인데, 당시 강사님이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유사하면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Dynalist 툴에 동일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필자는 이곳에 Mind Palace(마음궁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BBC에서 방영했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셜록 자신이 지금까지 봐왔던 것을 기억해내는 기억법의 이름이었다. 필자는 셜록만큼의 뛰어난 '뇌'를 이 Dynalist에 위임하였다. 그렇게 Library 항목에 순수하게 텍스트로만 쌓인 데이터는 7.7MByte이다(모든 항목은 15.7Mbyte). 한글 한 글자는 UTF-8 인코딩 방식으로 대략 2~3Byte를 차지하니 3Byte를 가정하고 계산하면 약 256만 6000글자 정도의 데이터가 보관되어 있다.
TByte(테라바이트)를 이야기하는 시대에서 매우 작은 데이터이지만 필자에겐 매우 소중한 데이터이다. 이렇게 차곡차곡 모아온 파편들이 필자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다. 흙 속에 묻혀있는 씨앗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엔 미약하고 고요했지만, 꾸준히 관심을 가져오고 가꿔온 씨앗은 착실하게 자라왔다. 그러나 이 메모는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메모였다. 8월 중순 무렵부터 작한 글쓰기는 이 꽃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다듬어보기 위한 발걸음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메모가 이렇게 성장한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글쓰기도 언젠가 또 다른 꽃을 피울 것이다.
이러한 파편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길을 내준다.
머지않아 (생각의 숲에 있는 빵 부스러기처럼) 이 메모들을 따라
자신이 찾고 있는 의미로 향하는 길을 그리게 될 것이다.
여백으로부터의 글쓰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