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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Nov 01. 2024

모래로 만들어진 세상(2) - 고속도로

기원전 35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발명되었다고 알려진 바퀴는 인류 역사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좀 더 손쉽게 이동시킬 수 있었던 혁명적인 발명품이었다. 바퀴의 발명과 더불어 중요해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평탄하고 내구성이 좋은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포장도로라는 영어 단어 pavement는 드넓은 제국을 연결하는 대형 도로망을 처음으로 건설한 고대 로마로부터 유래되었다.


18세기 영국인 존 멧캐프는 커다란 돌 위에 자갈을 덮어 배수가 잘 되는 현대식 포장도로를 개발했다. 이러한 방법은 요크셔의 좁은 도로 290KM을 포장했다. 1816년, 스코틀랜드인 존 매캐덤은 쇄석(부순 돌)을 땅에 깔고 말이 끄는 롤러로 쇄석을 다지면 단단한 포장도로가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합쳐져 그 위를 뜨거운 아스팔트로 덮어 먼지가 날리지 않고 쇄석을 서로 접착시키는 방식으로 포장도로를 만들었다. 이 포장법은 창시자의 이름을 딴 타르매캐덤(tarmacadam)이라 불렸다.


현대식 아스팔트 도로는 자갈과 모래 비중이 90%를 차지한다. 콘크리트 도로도 역시 모래와 자갈을 이용한다. 두 도로의 차이점이라면 모래와 자갈을 접착시키는 재료가 다른데 아스팔트 도로는 아스팔트로, 콘크리트 도로는 시멘트를 사용한다. 아스팔트 도로는 시공 단가가 낮고 도로의 소음이 적지만 콘크리트에 비해 내구성이 낮은 편이다. 콘크리트 도로는 내구성이 좋고 유지 보수비가 낮지만 시공 단가가 높고 도로 위 소음이 있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미국 전역에 도로망을 구축하고자 했는데 이에 막대한 모래가 사용되었다. 주와 주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에는 1.6km당 대략 1만 5000톤의 콘크리트가 소모되었다. 고속도로를 제외하고도 중앙분리대, 고가도로, 경사로, 바닥층을 합쳐 총 15억 톤의 모래가 쓰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 정도의 모래 양이면 지구와 달을 잇는 왕복 보행로를 만들고도 남는 양이었다. 이 모래와 자갈은 사람들의 주거방식, 일하는 방식, 먹는 음식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고속도로 덕분에 상품과 사람이 더욱 먼 곳까지 오고 갈 수 있었다. 교외 도시에서 도시로 통근할 수 있게 되자 그러한 생활방식을 감당 가능한 백인 중산층들이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는 화이트 플라이트(White Flight) 현상이 일어났다. 여러 도시들에서 인구 유출이 발생하자 세수가 줄고 공립학교와 같은 사회 제도적 기반이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도심에 위치한 상업 구역도 고속도로 주변 쇼핑몰에 손님을 빼앗기게 되었다. 고속도로 이전에 철도나 지방도로를 통해 화물 운송과 여객 수송 사업을 하던 소도시에도 타격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이런 소도시를 우회하자 해당 사업이 쇠락해갔고, 제조업 일자리도 고속도로 이동이 편하고 땅값이 싼 지역으로 이동했다. 


고속도로는 교통사고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역할도 했다. 공학적으로 계산된 횡경사도(곡선도로의 바깥쪽을 높인 것), 넓은 차선, 완만한 곡선도로, 상하행선 분리, 세심하게 계획된 합류부 덕분에 고속도로는 기존 도로보다 훨씬 안전했다. 고속도로가 막 착공된 시기인 1956년에는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률이 6.05였다. 미국 연방고속도로국에 따르면 현재 고속도로 주행거리 1억 6000만km당 사망자 발생률이 0.8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꾼 포장도로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인프라이다. 그리고 그 인프라를 구성하는 곳에서 항상 모래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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