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디캡 이론
유튜브에서 신기한 동물을 본 적이 있다. 마치 사람이 웃는 얼굴을 한 듯한 생명체가 새 한마리의 주위를 춤을 추듯 돌고 있었다. 그 새가 날아가버리자 사람의 얼굴 형태가 사라지더니 한 마리 새가 나왔다. 이 웃긴 생명체는 바로 어깨걸이 극락조이다. 극락조의 종류는 다양한데 넷플릭스 <우리의 지구>에서는 검은낫부리극락조라는 신기한 새도 있다. 날개를 머리 위로 쭉 피고 마치 발레를 하듯 다리를 오므렸다 핀다. 큰 극락조는 날개와 몸통 사이에 마치 공작과 같은 화려한 깃털을 가지고 있다.초원에 살고 있는 가젤은 포식자 앞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주변에 사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어떤 가젤은 재빨리 도망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걸어가다가 제자리에서 높이 날아오르는 '뻗정뛰기scotting'라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이 기이한 동물들에게 의문이 있다. 이들은 왜 생존에 불리하게 진화했을까? 진화는 환경에 적응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해야 한다. 기이하기도 하고 웃기게 생기기도 한 극락조의 깃털은 도대체 비행 능력에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눈에 띄는 깃털들은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을까? 공작의 긴 꼬리나 사슴의 거대한 뿔은 포식자들로부터 도망갈 때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다. 공작을 쫓는 포식자에게 긴 꼬리가 짓밟히거나 나무 사이로 도망가는 사슴의 뿔이 나뭇가지에 걸린다면 어떡할 것인가? 사자를 알아채고도 그 앞에서 스스로 도망갈 체력을 깎으며 높이뛰기를 보여주는 가젤의 행동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의문을 설명해주는 재미있는 이론이 하나 있다. 이스라엘의 동물생태학자 아모츠 자하비가 주장한 진화생물론 '핸디캡 이론(Handicap Principle)'이다. 흥미로운 이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핸디캡이 그 개체의 강인함을 증명한다고 본다. 극락조와 공작의 거추장스러운 깃털로 포식자의 눈에 쉽게 뜨이더라도, 사슴의 거대한 뿔이 포식자로부터 도망가는데 방해가 되더라도, 사자가 가까이 있음에도 뻗정뛰기는 가젤은 이러한 메시지를 던진다. '나는 이렇게 위험한 핸디캡을 가지고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어.' '나는 이렇게 쓸모없는 것에도 투자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건강해.' 포식자로부터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체력과 도망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개체들이 짝을 선택할 때 우선시되어, 그들의 과시적인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될 확률이 높아진다.
인간의 삶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컨대 부잣집을 떠올려보면 포함되는 이미지 중 하나는 집 앞의 잔디밭이다. 왜 부잣집에는 잔디밭이 있을까?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 우리의 선조들은 동굴 입구에 잔디를 심지 않았다. 잔디를 심는다는 생각은 중세 시대 말기, 영국과 프랑스 귀족들의 저택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이는 근대로 이어지며 귀족을 상징하는 표식이 되었다.하지만 생각해보라. 잔디밭에 심어진 잔디는 맛있는 열매를 맺어주지 않는다. 잔디는 전혀 인간에게 생산적이지 않다. 자라기는 금방 자라나서 일정 주기로 잔디를 깎아주어야 하고 물도 주어야 한다. 현대의 잔디 깎는 기계나 스프링쿨러가 없는 과거에는 더더욱 잔디밭을 관리하기 어려웠다. 풀을 먹는 동물들을 풀어서 관리할 수도 없었다. 이들은 잔디를 짓밟고 자기가 똥을 싼 곳 주변에 있는 잔디는 뜯어먹지 않기 때문에 잔디밭은 뒤죽박죽 지저분한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귀족들의 정갈한 잔디밭은 핸디캡 이론을 적용한 동물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나는 이렇게 생산적이지 못한 잔디에 정성을 쏟을만큼 많은 재력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농부에겐 잔디 따위에 쏟을 시간과 땅이 없었다. 잔디는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로 가치있는 것을 생산하지 않는다. 농부들에겐 밭에서 자라는 잡초와 같은 존재이다. 생산성있는 곡물의 영양분을 생산성 없는 잡초가 나누어먹고 있으니 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잔디밭은 낭비할 수 있는 여유를 보여주는 지위의 상징이었다. 골프가 값비싼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는 것도 이래서일까? 여간한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단지 조그만 공 하나를 굴리기 위해 그 넓은 잔디를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사람의 신체에도 잔디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머리카락이다. 머리카락은 생존에 필수적인 부위가 아니다. 게다가 머리카락은 연간 15cm만 자랄 정도로 천천히 자란다. 즉 기다랗고 윤기있는 머리카락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조선에서 지위가 높은 여성은 거대한 머리 모양의 가체를 착용하여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러한 가채를 만들기 위한 머리카락을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구입했다는 사실을 보면 농사꾼에게 보이는 잔디와 비슷한 모습이 겹쳐 보인다. 목뼈에 무리가 갈 정도의 가체에 돈을 투자하기도 했는데 조선왕조실록에 가체를 검색해보면 영조실록이나 정조실록에는 사치의 풍습을 없애기 위해 가체를 금하는 명령을 내렸다는 기록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라푼젤을 찾아간 왕자는 그녀의 길고도 찰랑거리는 머리에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고귀한 명품, 스포츠카 등으로 재산이 많은 것을 과시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나는 이만큼의 돈을 써도 배우자와 후대의 자손을 부양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문신을 몸에 새기는 행위는 고통스럽다. 현대 의학이 나오기 전에는 감염도 있어 상당히 위험한 행위였다. 그러니 문신을 새기는 행위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강인함과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