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화학자 존 뉴랜즈(John Newlands, 1837~1898)는 원소의 배열을 피아노의 8 음계와 비교했다. 원소를 원자량 순서대로 배열해 보면 여덟 번째 원소의 성질이 첫 번째 원소의 성질과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원소 배열을 '옥타브 법칙'이라 불렀다.
그러나 많은 영국 화학자들은 뉴랜즈의 화학적 발견을 비웃었다. 당대 유명한 화학자였던 마이클 포스터는 뉴랜즈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원소를 알파벳 순서대로 배열해서 연구하지 않습니까?
화학 원소를 피아노 건반과 비교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 마이클 포스터(Michael Foster, 1836~1907) 영국 화학자
뉴랜즈는 이러한 비난에 실망하며 화학 연구를 포기하고 설탕 제조업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멘델레예프는 당시 발견된 63개의 원소들에서 비슷한 성질을 가진 원소들을 실험실 벽에 한 줄로 붙였다. 무언가 규칙이 있어 보였다. 그는 뉴랜즈의 옥타브 법칙을 떠올렸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화학 시간에 배우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당시 원자량 127로 측정된 아이오딘과 원자량 128의 텔루륨이었다. 원자량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아이오딘 -> 텔루륨 순서대로 배치되어야 했지만, 원소의 성질에 따라 배열한다면 텔루륨 -> 아이오딘 순서가 되어야 했다.
멘델레예프는 몇 번이고 다시 생각했지만, 이 주기율에는 오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이오딘이나 텔루륨의 원자량이 잘못 측정된 것이 아닐까? 그는 원소의 성질에 따라 텔루륨의 원자량이 당대 측정된 128보다 작은 123 ~ 126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수많은 화학자에게 비난을 받게 되지만, 멘델레예프는 과감하게 주기율표에서 텔루륨을 아이오딘보다 앞에 배치한다. 몇 년 후 실제로 텔루륨의 원자량이 아이오딘보다 작다는 결과가 실험을 통해 발견되었다.
또한 당시 발견된 63가지의 원소를 주기율표에 배치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빈자리가 나왔다. 현시대의 입장에서 보면 당대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가 있다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이러한 빈자리는 당대 과학자들이 멘델레예프를 공격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멘델레예프는 이러한 빈칸이 자신의 이론을 공격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주기율표의 빈칸을 남겨두었다.
이렇게 보면 멘델레예프는 훌륭한 과학자인 것 같지만 그에게도 실수는 있었다.
"주기율표의 첫 번째 줄 마지막 자리에
이 기체 원소가 들어갈 자리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옥스퍼드에서 열린 과학 학술회의에서 램지와 레일리 남작은 첫 번째 불활성기체를 발견했다. 화학 결합이 잘 일어나지 않는 성질을 빗대어 ‘나태하다’라는 뜻의 아르곤(Arg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아르곤의 발견은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를 위협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는 아르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억지로 아르곤을 끼워 넣는다면 그의 주기율 이론에 큰 혼란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멘델레예프는 아르곤이 새로운 원소가 아니며, 밀집된 질소인 N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추후 이루어진 실험으로 아르곤은 확실히 새로운 원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램지와 레일리는 아르곤을 원소 주기율표상 0족(18족)에 편입시켰다. 이후 0족에 해당하는 헬륨, 네온, 크립톤, 제논, 라돈 등 불활성기체가 연이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불활성기체가 하나씩 발견되는 여정에서 멘델레예프는 화학의 발전을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또한 현대의 장비로 측정한 원소들의 원자량을 보자. 텔루륨은 127.60이고 그 뒤의 아이오딘은 126.9045다. 멘델레예프의 추측대로 텔루륨의 원자량은 128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아이오딘보다 원자량이 크다. 그러나 현대 주기율표에서도 텔루륨은 아이오딘보다 먼저 배치되어 있다.(또한 아르곤의 원자량은 39.948이고 그 뒤에 배치된 칼륨의 원자량은 39.098이다. 코발트는 58.9332인데 그 뒤에 배치된 니켈은 58.6934다.)
이는 멘델레예프의 추측대로 주기율표가 원자량에 의해 나열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원소의 성질이 양성자의 수나 핵외전자의 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멘델레예프 시대 화학자들은 원자의 구조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원자가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돌턴의 원자설을 굳게 믿었다. 그래서 톰슨이 원자보다 작은 입자인 전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자 멘델레예프는 즉각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주기율 이론을 확신했다. 덕분에 텔루륨 원자량이 잘못 측정되었다는 대담한 가설과 주기율표의 빈칸이라는 훌륭한 선택을 했다. 그러나 동일한 이유로 자신의 이론을 너무 확신한 나머지 잘못된 고집을 부렸다. 그의 올바른 추론과 잘못된 추론이 동일한 고집에서 나왔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하다.
또한 멘델레예프가 주기율을 발견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독일 화학자 율리우스 마이어(Julius Meyer) 또한 주기율을 발견했다. 이는 주기율이라는 과학 법칙이 발견될 수 있는 당대 기반이 마련된 덕분이었다. 충분한 원소가 발견된 상황이었고 원자량과 원소의 성질을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소 성질에 따른 주기성 규칙이 보일 수 있었다. 모든 인류가 그러하지만, 멘델레예프 역시 거인의 어깨 위에서 주기율을 발견한 것이다. 만약 멘델레예프가 한 세대 일찍 태어났다면, 우리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아닌 마이어의 주기율표를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