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를 보라!
자연계에서는 수컷의 몸에서 임신과 출산이 일어나는 동물도 있다. 바로 바다에 사는 말, 해마이다.
해마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며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었다. 해마는 수컷이 자신의 배를 빵빵하게 부풀리며 구애를 한다.
이 배는 보육낭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 보육낭이 클수록 새끼를 많이 가질 수 있다는 번식 능력의 자랑이다. 그렇지만 이 보육낭은 캥거루와 같이 이미 태어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해마는 암컷의 수정되지 않은 알을 수컷의 보육낭에 낳고 그 안에서 수컷의 정자를 통해 수정시킨다. 실제로 해마의 새끼가 수정되는 것은 ‘수컷의 배’이다. 3주 정도의 임신 기간을 거쳐 수컷이 출산을 한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들은 암컷이 물속에 낳은 수정되지 않은 알에 정자를 뿌리는 방식으로 수정을 한다. 물속에 낳은 알이라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는데 매우 취약하고, 수컷의 입장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수정하는데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다른 물고기가 뿌린 정자로 충분히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는 이러한 물고기들과 다른 방식으로 대를 잇는 방식을 진화해 왔는데, 다른 물고기들보다 한 번에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양이 적기 때문에 1년에 10번 이상 출산을 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 동물의 왕국이라는 방송을 좋아했다. 자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였는데, 상황과 환경에 맞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야생의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었지만, 진정 즐거웠던 것은 생명마다 다른 생활 방식이었다. 그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 이유를 들을 때마다 필자가 가지고 있었던 초라한 상식은 망가지고 다시 재건되었다.
예컨대 이런 영상을 본다고 해보자. 썸네일에 나오는 동물은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여우원숭이 시파카이다. 땅에서 발레를 하듯이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다른 원숭이들처럼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시파카는 작은 나뭇가지와 수직으로 높게 선 나무에서 살기에 적합하도록 진화했다. 이런 나무를 타고 넘나들기 위해선 수직으로 솟은 몸과 팔보다 긴 다리가 적합했다. 마치 발레 동작의 플리에('구부리다', '접다'라는 뜻으로 꼿꼿한 자세로 무릎을 구부리는 발레의 기본 동작)를 하듯이 나무 사이를 점프해 다닌다.
다만 지면 위에선 다리보다 훨씬 짧은 팔 때문에 사족보행을 하기 힘들다. 그래서 지면 위에서도 나무 사이를 오갈 때처럼 점프를 하면서 이동한다. 꼬리와 팔을 이용해 균형을 유지한다. 시파카보다 몸집이 큰 인드리원숭이도 비슷하게 이동하는데, 시파카와 다르게 꼬리가 없어 움직임이 서툴러보인다.(https://youtu.be/4sxm21axE5Q?t=550)
땃쥐라는 동물을 관찰하면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다. 어미 땃쥐가 선두에 서고, 자신의 새끼들이 뒤를 따른다. 어미는 새끼의 수면시간에는 개의치 않고 이런 기차놀이를 이어간다. 이런 모습 역시 포식자에게 발견되기 쉬워 바보 같은 행동으로 보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땃쥐는 인간보다 심장박동이 10배나 빨라서, 생존을 위해 2시간 간격으로 사냥을 성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땃쥐가 새끼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땃쥐의 새끼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상태로 태어난다. 생후 3일 후 걸을 수 있고, 생후 2주가 되면 어미만큼 덩치가 커지지만 감각은 온전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미가 사냥을 위해 이동해야 할 때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꼬리를 물고 필사적으로 어미를 따라간다. 어미와 떨어지는 것보다 포식자의 눈에 띄더라도 어미와 같이 따라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필자는 유연한 생각을 자연계에서 많이 배운다. 자연계에서 생명체의 다양한 생존방식은 필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준다.
- 생존 방식에 정답은 없고, 모든 선택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존재한다.(시파카의 걸음, 땃쥐의 기차놀이)
- 상식을 의심하라(수컷 해마의 임신과 출산).
- 어떤 행동의 환경과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필자는 스스로가 가진 고정관념, 상식이라 여겼던 것이 파괴되고, 인지적 지평이 넓어지는 순간이 좋다. 그런 순간을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연계에서 생명의 행동 방식을 관찰하는 것이다. 필자는 자연계로부터 그런 순간을 종종 마주했고, 필자의 글에 여러 생명체의 비유를 넣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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