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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Sep 18. 2024

박쥐 박사님이 인간을 관찰한다면?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는 법


혹성탈출이란 영화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뇌기능을 발전시키기 위한 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인원들을 이용하였는데, 이 약의 부작용으로 인간은 지능이 퇴화되거나 죽고, 유인원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 서사를 잠시 빌리되 유인원이 아닌 박쥐가 인간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해 볼 것이다.


박쥐 박사님은 호모 사피엔스를 연구하는 생명학자이다. 그런데 그는 인간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기이한 연구 결과 보고서를 쓰게 된다. 인간이라는 종은 자신들에 비해 소리를 '알아채는' 능력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박쥐 박사님은 생각한다. "도대체 이 귀로 어떻게 앞을 보고 다니는 거지?"



인간을 관찰하는 박쥐 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본다'라는 관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는 '본다'는 것을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인지한다. 눈은 빛이라는 정보를 받아들여 뇌로 보내고, 뇌는 세상을 지각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여러분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 사과나무에서 빨간 사과를 보았을 때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과이지만 '빨갛다'라는 색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과는 단지 파장이 650nm(나노미터)인 빛을 반사하고 있는데, 인간의 뇌는 이것을 빨갛다는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고도로 발전한 외계인이 지구에 왔을 때 사과가 반사하는 빛의 파장을 측정할 순 있어도, 인간이 보는 '빨간색'이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인간은 세상을 지각하는 데 필요한 감각 중에서 시각에 커다란 투자를 해왔다. 시각에 동원되는 감각 수용기의 수는 2억 개 정도 되는데, 뇌는 나머지 감각으로부터 들어오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보다 많은 자원을 시각 처리에 소모한다. 다른 어떤 감각보다 세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관점을 View라고 일컫는지도 모르겠다. 박쥐 박사님의 세상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단어가 Listen이나 Hear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쥐 박사님의 이야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박쥐 박사님은 주로 귀를 통해 세상을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도 귀를 통해 세상을 볼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음파(사실 초음파라는 것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쓰이는 단어이다.)를 발생시키는 기관도 없고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귀를 보고서는 의아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놀랍게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을 벗어나 확장할 수 있다. 관점을 확장하기 위해서 우선은 세상에 다양한 존재 자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위에서 박쥐 박사님이 의아해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은 박쥐가 '귀'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박쥐 박사님 또한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귀'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정확히 그려낼 수 없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서는 잠수함의 음파 탐지기에 이러한 사실을 이용했다. 애초에 '귀'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로 관점을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우리는 혹성탈출이나 박쥐 박사의 이야기처럼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같이 상상을 통해 지어진 이야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뭘까? 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소설은 감추어진 삶의 목격자'라는 말로 정리했다. 가령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생각해 보자. 햄릿은 현재 왕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복수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이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다음날 뉴스에서는 "선왕의 아들이 왕을 살해하다"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되지 않았을까? 민중은 이 뉴스 기사를 보고 햄릿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햄릿을 극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 사건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진다. 현실에서는 심하게 틀어진 일탈의 광경일지라도 우리는 너그럽게 볼 수 있게 된다. 그 사건 뒤에 감추어졌던 인물이 처한 상황, 당시 그 인물의 심리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 인물의 선악에서 한 발짝 벗어나, 현실에서는 알기 쉽지 않은 한 인물의 감추어진 삶을 목도하는 목격자가 된다. 그리고 신문 헤드라인 한 줄만을 봤을 때보다 그 상황을 더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박쥐 예시로 돌아가보면 인간과 박쥐의 상황이 바뀌었다는 상상을 통해 우리는 '본다는 것'에 대한 관점을 확장하여 상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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