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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Sep 16. 2024

시계방향이 어느 쪽이죠?

북반구와 남반구, 시계방향이 다르다고?


시간은 우리 일상 속에서 가장 친숙하면서도 신비로운 개념 중 하나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시간을 인식하고 활용한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 일상적인 스케줄, 계절의 변화까지, 모든 것은 시간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고, 약속을 지키며, 목표를 달성해 나간다. 


시간은 또한 감정과 기억을 기록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특정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며, 우리는 이 기억들을 통해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예를 들어, 생일이나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간은 먼 선조들 또한 측정해 왔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더 정밀하게 다가온 건 산업혁명 이후였다. 이전 농경사회는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오면 되었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공장은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좀 더 명확한 시간관념이 생겨야 했다. 정기적으로 도시를 오가는 기차가 생기면서 기차 시간을 맞춰야 정확히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시계는 매우 비싼 기계로서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시계탑(런던의 빅벤 같은)을 설치하기도 했다.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도 있다. '대한민국'과 '시간'하면 생각나는 단어로 '빨리빨리'가 떠오를 수도 있지만, 한국 전쟁 시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한국인들을 모습을 낮잡아보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12 지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자시(밤 11시 오전 1시)부터 해시(오후 9시~오후 11시)로 2시간 간격의 시간관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약속 시간의 30분~1시간 늦는 것은 당연한 오차범위 수준이었을 것이다. 우리 또한 산업혁명을 거치며 시간관념이 더 세분화되었다.




우리의 삶에 너무나 깊숙이,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해 온 이 시간에 대해서 한 가지 의문점을 가져보고자 한다. 눈을 감고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를 한 번 상상해 보라. 사람마다 상상하는 시계의 디자인은 다르겠지만 이것만큼은 동일할 거라 생각한다. 여러분이 상상한 시계의 초침, 분침, 또는 시침은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나요? 


"당연히 시계방향이죠!" 


그렇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시계방향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애초에 음료수의 병뚜껑을 따거나, 나사를 조일 때 시계방향이냐 반시계방향이냐라고 물어보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러나 제가 드리고 싶은 의문점은 이것이다. 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시계방향'이냐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에 답변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거창하게 앙부일구와 같은 해시계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 운동장에 막대기를 하나 꽂아놓고 보면 막대기의 그림자가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물시계나 기계식 시계, 전자시계보다 만들기가 단순하여 가장 먼저 쓰였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한 해시계는 인류가 하루라는 시간을 인식할 수 있었던 도구였다.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다. 그러니 당연히 그림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게 되므로 우리의 선조들은 그림자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시계방향에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히'는 지구 절반의 관점에 불과하다.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해는 북쪽보다 남쪽에 치우쳐 이동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를 등지고 서서 그림자의 이동방향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시계방향'이 맞다. 그러나 이것을 뒤집어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동일하게 생각해 보자


남반구에서도 동일하게 해는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지만 해는 남쪽보다 북쪽을 거쳐 이동하게 된다. 동일한 기준으로 해를 등지고 그림자를 살펴본다면 그림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반시계방향'으로 이동한다.


실제로 2014년 볼리비아 행정 수도(볼리비아의 수도는 2개 있다. 해발 3650미터에 위치한 입법부와 행정부가 위치한 라파스, 사법부가 위치한 볼리비아 독립 당시 초기 수도인 수크레) 의사당은 '남반구 시계'를 내걸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시계 모양과 비슷하지만, 숫자 배치도 시계도 반대방향이다. 다비드 초케우안카라는 당시 외무장관은 남반구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우리의 시계는 왼쪽으로 돈다고 전했다.




사실 해시계가 간단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한낮에는 짧고 밤에는 길어지는 그림자의 길이, 절기에 따라 해가 떠있는 시간도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해시계를 만들기 위해선 높은 수준에 천문학 지식이 필요했다. 여러 해에 걸쳐 해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관찰하는 것은 국가적 권력이 필요한 일이였다. 세계지도를 펼쳐보았을 때 지구에는 북반구에 더 많은 육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구를 생각해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1, 2, 3위 국가(중국, 인도, 미국)도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님의 저자 <총, 균, 쇠>에서는 이런 주장이 있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긴 반면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다. 동서로 긴 유라시아 대륙은 같은 기후대를 공유하고 있는 문명이 넓게 퍼져 작물과 가축의 이동에 있어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보다 지리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문명의 발전 속도가 더 빨랐던 유라시아 대륙도 북반구에 위치해 있다. 


물론 놀라운 천문학적 지식을 지녔던 남아메리카의 잉카나 마야 문명도 존재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국가들은 북반구에 위치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시계방향은 인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유리한 측면에 있었던 북반구의 시계 방향에 대한 관념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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