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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Sep 13. 2024

피자에 파인애플을 얹어먹으면 안되나요?


쇼츠 영상을 수없이 넘기다가 ‘이탈리아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라는 몇몇 콘텐츠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 음식에 관련된 내용들인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거나 와인에 얼음을 붓고, 피자에 파인애플을 얹거나 케첩을 뿌려먹는 것이다. 마치 외국인들이 컵라면 규격을 안 맞추고 홍수를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은 문화충격일까? 이탈리아인들은 그런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나라의 로컬 음식의 근본적인 모습, 예컨대 이탈리아의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피자와 스파게티, 인도 식당의 매운 고추로 만들어진 수많은 향신료, 스위스 카페에 크림을 넣은 코코아, 아르헨티나의 수많은 스테이크, 아일랜드 식당의 감자 요리. 이 중 어떤 음식도 그 나라에 원산지를 두고 있지 않다.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포크로 스파게티를 뜰 수도 없었고(심지어 당시에는 포크도 없었다), 부처는 고추가 포함된 향신료를 넣은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 15세기 이전 아르헨티나에서 구경할 수 있는 스테이크는 라마 고기 뿐이였고, 아일랜드에 감자가 들어온 지는 4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책 <집단 착각>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할 만한 흥미로운 토마토 이야기가 나온다. 대항해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코르테즈가 아즈텍산 토마토를 유럽 땅에 들여왔다. 새로운 과일에 많은 귀족들이 흥미를 보였으나 그들은 곧 토마토가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로도 수 백년간 그들은 토마토에 독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초기에 토마토를 먹은 귀족들의 목숨을 앗아간 진짜 원인은 그들의 세련된 쟁반과 접시, 그리고 식기에 있었다. 당시 주석으로 만든 접시에 토마토의 강한 산성이 만나며 부식되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흘러나온 다량의 납이 원인이었다. 우리에게 납 중독이라 알려진 병에 걸려버린 것이었다.


유독한 토마토라는 억울한 누명은 1800년 무렵이 되어서야 벗겨졌다. 그들의 무죄를 증명한 것은 고상한 재판장이나, 뛰어난 과학자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고된 노동에 시달려 음식을 접시에 올려 놓고 먹을 정신 조차 없었던 노동자들이었다. 밀가루로 도우를 만들어 토마토 소스를 얹어 굽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바로 가난한 자들의 음식 피자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바로 고추가루가 들어간 빨간 김장 김치이다. 김치 뿐 아니라 떡볶이, 매운탕, 불닭볶음면 등 빨간맛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빠질 수 없는 빨간맛, ‘고추’는 한반도에 자라던 것이 아니었다. 이 또한 대항해시대의 산물이었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고추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자라났다고 보고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당도했을 때 고추로 요리해 먹는 원주민들을 보고 스페인으로 고추를 가지고 갔으며, 전 세계에 활발하게 교류하던 포루투갈,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16~17세기 무렵에 비로서 넘어왔다. 16세기 중국에서 전통 약물에 대해 관찰하여 발간된 발간된 본초강목(本草纲目)에서는 고추에 대한 언급이 없는 반면, 일본의 초목육부경종법(草木六部耕種法)에는 1542년 포루투갈 상인이 고추를 전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고추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조선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지봉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나온다.


고추는 독초다. 왜국에서 처음 들어와 왜개자(倭介子)라 불리기도 한다. 주막에선 소주에 타서 팔았는데 이것을 마신 사람이 많이 죽었다. - <지봉유설> 19권 식물부

 학자들은 우리 김치 문화가 16세기보다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고 보지만, 적어도 고춧가루가 뿌려진 빨간 김치는 16세기 이후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참고사항 : 일부 학자들은 16세기 이전부터 한국에 고추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책 <사피엔스>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통 음식들이 사실은 그 나라에서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닌 세계화의 산물이라 이야기한다. 전통 음식의 현재 모습은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교류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약 400여 년에 달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음식의 시작 또한 처음에는 낯선 음식과의 조합이었다. 각국의 전통음식에 대한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이질적인 재료의 조합으로 우리의 식탁에 새로운 맛과 경험을 더해줄 것 또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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