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루함이 던지는 메시지

지루함의 쓸모

by Nova B

불편한 지루함


아무런 할 일이 없을 때 지독한 감정이 밀려온다. 바로 지루함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바쁨'을 숭상한다. '나 요즘 너무 바뻐'라는 말은 영광의 훈장이 되었다. 반면 지루함은 나태, 목표의식 부족과 같은 수치스럽게 여겨진다. 구글에서 'bored'를 검색해보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bored이미지검색.png 구글 이미지 검색 'bored'


워털루 대학교 신경과학자 제임스 댄커트(James Dankert)는 지루함이 실제로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루함을 느끼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측정했는데, 다른 감정보다 지루함을 느낄 때 코르티솔 수치가 높았다.


버지니아 대학교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빈 방에 앉아 자신만의 생각에 몰두해달라고 요청했다. 몇몇은 실험환경에 지루함을 느꼈는데, 참가자들 스스로에게 전기 충격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자 2/3 남성과 1/4 여성이 최소 1회 자신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다. 어떤 사람은 15분 동안 자신에게 190회 전기 충격을 가하는 버튼을 눌렀다.


이러한 실험 결과가 지루함을 터부시 여기는 문화 때문인지, 인간 본성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적어도 현대 사회에 있어 지루함은 불편하고 회피하고 싶은 감정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마치 스스로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것처럼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쇼츠를 끝없이 훑어내리는 등 주의를 분산시키며 시간을 때운다(Doing time, Killing Time).




지루함은 나쁜 감정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외면하는 지루함은 나쁜걸가? 사실 원래부터 나쁘거나 잘못된 감정이란 것은 없다. 생명체에게 감정이란 쓰임새가 있다. 두려움은 위험을 피하게 하고, 분노는 부당함에 맞서게 하며, 슬픔은 상실을 받아들이고 회복할 시간을 준다. 지루함 역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감정이다.


지루함은 현재의 삶이나 활동이 나에게 충분한 의미나 자극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전달한다. 이 신호는 자신의 내면과 주변 환경을 되돌아볼 계기를 마련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관심사, 욕구,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시도할 수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타운센드의 의붓아들에게 귀족으로서 가져야할 교양과 품위를 가르치는 개인 교사 자격으로 1764년 아이의 가족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된다. 가장 먼저 들렀던 곳은 프랑스 남서부 도시인 툴루즈였는데 애덤 스미스는 이 도시에서 지루함을 느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무려 1년 반이나 체류하게 되었는데, 이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데이비드 흄(경험주의 철학자)에게 짤막한 편지를 쓴다.


"저는 무료한 시간이나 때울 생각으로 책을 한 권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책은 바로 그의 저서에서 가장 유명하고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회자되는 <국부론> 이었다.




지루함은 잘못이 없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저술 일화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지루함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지루함이 불편해서 가능한 신속하고 손쉬운 해결법을 찾는다. 그것은 자신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여러 기업들은 우리의 주의라는 자원을 가져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 따위는 손쉽다. 그러나 지루함이 우리에게 주는 신호, 즉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라는 심오한 질문의 답은 주의를 집중해야만 나올 수 있다.


지루함에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인식해야 한다. 흔히 지루함을 인식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핸드폰에 손을 뻗는 게 익숙하다. 일단 중요한 것은 쇼츠를 넘기는 내 행동이 지루함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임을 인지해야 한다. 지루함을 인식했다면 온갖 외부 사물로부터의 유혹을 뿌리치고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지루함을 해결하는데 외부 사물에 의존할수록 주체성은 훼손되고 지루함에 더더욱 취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지루함이 보내는 신호에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주의력을 통제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지루함에 대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텅 비어진 시간을 어느정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루함 자체는 유익하거나 유해하지 않다. 지루함을 덜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는 역할은 '지루함'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한 결정은 전적으로 지루함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지루함에게 당신은 어떤 대답을 보여주고 싶은가?



참고문헌

<지루함의 심리학>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왜 '좋은 과정'에 투자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