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웨이>
게임을 하던 아이의 화면에 'Fail'이라는 글자가 뜨자 아이는 좋아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실패'란 단어를 보고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실패의 뜻이 뭔지 아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다시 하라는 거잖아
아이의 이 말은 실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는 언제부터 실패를 '다시 시작'이 아니라 '끝'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한국 사회는 실패를 기피하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 최근 중앙일보의 한 기사를 보면 한국, 미국, 일본, 중국 4개국 2030세대 청년 500여 명 씩 총 2103을 조사한 결과, 창업을 시도해 보았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에서 한국은 꼴지였다(미국 35.1%, 중국 29.4%, 일본 16.4%, 한국 12.2%). 관심있는 창업 업종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한국은 외식과 소매업과 같은 일반 서비스업(35.2%) 창업에 관심을 보인 반면, 미국과 일본은 지식 서비스업(각각 26.9%, 29.1%)에 관심이 제일 많았고, 중국은 IT 기반 산업(35.1%)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 청년들이 창업을 고려하지 않는 가장 큰 요인은 실패에 대한 리스크의 부담(34.9%)과 안정적인 직장 선호(34%)였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R&D 과제 성공률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이 보인다. 2019년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GDP대비 연구 개발비 비율은 대한민국이 1등(4.55%)이었으며, 정부 연구 개발(R&D) 과제 성공률은 무려 98%였다. 언뜻 보면 매우 긍정적인 수치인 듯 하지만, 도전과 실패가 만연해야 할 연구 개발 분야에서 100%의 성공률에 가까운 수치는 의아하다. 구조적인 문제도 존재하지만, 98%의 성공률은 실패를 피할 수 있는 안정적인 프로젝트만을 수행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단기간에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에는 '빨리빨리', '더 많이'라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그 무엇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실패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실패를 용인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이 발사를 마치고 착륙장에 다시 돌아와 착륙하는 영상을 좋아한다. 그 무거운 동체가 정확히 착륙장에 돌아와 사뿐히 안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탄을 금치 못한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내가 불가능하다며 불평하는 것들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렇게 말도 안되는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 스페이스 X팀은 작은 규모의 재사용 로켓을 자주 쏘아올리며 실패에 대한 데이터를 계속 쌓고 분석했다. 빠르게 실패하고, 피드백을 반영해 재설계하면서 지금의 재사용 로켓이 탄생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 톱이었던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실패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워런 버핏은 자신과 멍거가 존 록펠러나 앤드루 카네기 같은 가장 부유한 인물들을 연구하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찰리 멍거는 인간의 오판 심리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무려 25가지를 상세히 설명하며 각각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에서 가장 큰 공간은 복도 끝에 위치한 참고 도서관이다. 이곳은 각종 기업들의 연례 보고서와 회계 자료가 담겨 있다. 그들은 성공한 기업이 어떻게 수익을 내는 지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기업이 실패하고 어떻게 돈을 잃었는지 배웠다고 말했다. 그들이 기업 투자를 할 때 중요시 여기는 경영진 평가에서도, 경영진이 실수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을 높게 산다.
NASA는 가장 계획적이고 철저한 조직이다. 우주라는 미지의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 모든 가능성과 대책을 강구한다. 아직 사람을 달에 보내기 전이었던 1961년, NASA는 새로 개발한 우주복을 테스트하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우주 경계선에 가까운 곳까지 올라갔다. 이 연구에 참여한 빅터 프래더는 성공적인 비행을 마쳤고 우주복 테스트도 긍정적이었다. 실험을 마치고 숨을 쉴 수 있는 고도까지 내려오자 그는 우주복 헬멧을 벗고 공기를 마셨다. 예정대로 바다 위에 안착했고, 이제 헬리콥터가 그를 안전하게 끌어올리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그는 헬리콥터에서 나온 줄을 잡으려다 미끄러져 그만 바다에 빠졌다.
연구자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우주복에는 방수 기능이 있었으며, 물에 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레더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열었던 헬멧으로 물이 차 방수 기능은 무의미했으며 물 위로 떠오를 수도 없었다. 그는 결국 익사했다.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수많은 변수와 가능성을 고려한 NASA였지만, 마지막의 작은 실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NASA의 예시에서 보여주는 교훈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대비한 후에도 남는 것이 리스크라는 점이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리스크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패는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아갔기 때문에 인류는 달에 조그맣지만 위대한 발자국 도장을 찍었다.
진정한 성장은 실패를 연구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4살 아이에게 실패는 '다시 시작'이었다. 스페이스X에게 실패는 '혁신의 연료'였다. 버핏과 멍거에게 실패는 '연구 대상'이었다. NASA에게 실패는 '극복해야 할 과정'이었다. 한 차례의 대형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29 건의 경미한 사고와 300건의 사고 징후가 보인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나는 이 법칙의 한 차례 대형 재난을 성공이란 단어로 바꾸어 본다. 300번의 실패와 29건의 경미한 승리가 1건의 위대한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성공과 실패한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패한 사람들의 경우 포기했다는 겁니다.
이들은 성공한 사람들보다
빨리 포기해버린 사람들입니다
-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