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부자가 되기로 했다

by 버스 모는 이대표
"내 오른손은 늘 기어봉 위에 있다. 힘이 아닌 감각으로 속도를 통제하기 위해."

신호 대기 중,

기어봉 위에 올려진 내 오른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굳은살도 없이

고생을 몰랐을 것 같은 손.


현장을 누비는 트럭 기사의 손이라기엔

꽤나 이질적이다.


남들은 트럭 운전이

힘으로 하는 고된 노동이라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트럭은 근력이 아니라

'감각'으로 모는 것이다.


내 차는 승용차처럼

푹신하게 몸을 파묻고 타는 차가 아니다.


나는 운전석에 앉으면

습관처럼 허리를 90도로 꼿꼿하게 세운다.


구부정하게 앉으면

장시간 운전을 버틸 수 없다.


허리가 무너지면

도로 위에서 내 몸도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항상

긴장감이 감도는 '정자세'를 유지한다.


내 두 손의 위치도 승용차와는 사뭇 다르다.


승용차 운전자가 두 손으로 핸들을 잡을 때,

내 오른손은 늘 기어봉 위에 올라가 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시내 주행.


내 왼손은

승용차보다는 비스듬히 누운 핸들을

움켜쥐고 방향을 잡는다.


동시에,

내 오른손은

기어봉을 잡고 엔진의 힘을 조절한다.


왼손으로 방향을 잡고,

오른손으로 속도를 통제하는 것.


이 두 손의 박자가 맞아야

트럭은 덜컹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나아간다.


내 투자의 세계도 이 운전석과 똑같다.


내 트럭 안은 내 투자의 축소판이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캔커피 하나,

구겨진 영수증 한 장 없다.


나는 좁은 운전석을

'움직이는 서재'이자 '집무실'처럼 관리한다.


공간이 작다고

생각까지 작아져서는 안 된다.


트럭 안을

서재처럼 정갈하게 유지하는 이유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이유도 같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판단도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새벽 3시.
고속도로 위에 나 홀로 깨어있는 시간.


어김없이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는 순간이 온다.

가장 위험한 순간.

나는 습관처럼 휴대폰 화면을 켠다.


정갈한 대시보드 위,

구글 포토 위젯이 무심하게 띄워주는

3년 전 아이들의 얼굴.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나는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이땐 참 조막만 했는데...

지금이랑 웃는 건 똑같네."


그 작은 혼잣말이 나를 깨운다.


카페인 따위가 아니다.
나는 잠을 참는 게 아니다.


그저 이 아이들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흐릿해지려는 시야를 다시 맑게 닦아낼 뿐이다.

그저,

그냥,

아빠니까.




어느덧 새벽이 지나고,

도로 위에도 아침이 밝아온다.


한산했던 도로는

출근길 차량들로 금세 전쟁터가 된다.

"빵빵!"


상념에 잠긴 사이,

옆 차선에서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들린다.


방향지시등도 없이 칼치기를 하며

내 앞을 아슬아슬하게 끼어드는 승용차다.


운전석이 높아, 도로를 내려다보는

내 눈엔 뻔히 보인다.


지금 목숨 걸고 끼어들어 봤자,

저 앞 교차로는 꽉 막혀 있다는 게.


나는 기어봉을 잡은 오른손을

까딱하며 피식 웃고 만다.


"그래 봐야 다음 신호등이다."


네가 아무리 요란하게

차선을 바꾸고 엔진을 쥐어짜도,

결국 저 앞 빨간불 앞에서는 멈춰야 한다.


나는 기어를 중립으로 빼고,

편안하게 숨을 고른다.


조급할 필요 없다.

어차피 신호가 바뀌면,

내 트럭의 바퀴는 다시 구를 테니까.


나는 칼치기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내 등 뒤엔 1.2톤의 짐이,

내 어깨엔 가족의 인생이 실려 있다.


그 무게를 아는 사람은

함부로 핸들을 꺾거나 급가속을 하지 않는다.




투자의 세계로 핸들을 꺾고 보니,

그곳도 도로 위와 다를 게 없었다.


매일 아침, 세상은 요란하다.
어떤 주식이 상한가를 갔고,

누가 코인으로 몇 배를 벌었다는 소식이

칼치기하는 차들처럼 내 옆을 쌩쌩 지나간다.


처음엔 내 트럭이

너무 느린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트럭 운전 10년 차,

나는 도로 위에서 배운 진리를 떠올린다.


'주식 시장도

결국 신호등 없는 도로는 아니다.'


폭락장이라는 빨간불이 켜지면,

과속하던 차들은 가장 먼저 멈춰 선다.


요란하게 차선을 바꾸던 사람들은

'수수료'라는 통행료만 잔뜩 내고 제자리를 맴돈다.


사람들이 묻는다.
"하루 종일 운전대 잡고 계시는데,

주식 창 볼 시간은 있으세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나는 대답한다.
"바른 자세로 앉아있다면

차가 흔들리는 거지, 내가 흔들리는 건 아니니까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가가 오르나 내리나.


나는 그저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왼손으로 방향을 잡고

오른손으로 기어를 넣으며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제까짓 게 우상향 안 하고 배기겠는가.


뜨거운 열정보다 무서운 건,

차가운 습관이다.


나는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기어를 넣고,

월급날이 되면 아무 생각 없이 매수 버튼을 누른다.


그저 할 뿐이다.


남들이

화려한 칼치기를 하며 스릴을 즐길 때,


나는

기어봉 위에서 느껴지는

엔진의 진동을 즐기며 내 차선을 지킨다.


결국

가장 멀리,

가장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지루함을 견디며

끝까지 바른 자세를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아니까.


나는 오늘도 허리를 세우고 트럭을 몬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냥' 부자가 되기로 했다.



디지털 인장 누끼.png 소중한 것들을 지키겠다는 오늘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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