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 된장찌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자들이 무엇보다도 부엌에서 해방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 중에 하나다. 세상과 지구를 구 할 일에 여자, 남자를 막론하고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여자들이 부엌에서 소비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인생 소비이다. 진시황은 매일 다른 요리를 먹었고 새로운 요리가 아니면 요리담당자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거야 황제나 하는 일이고.. 어쨌든 세치 혀를 호사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절대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요리 전문가나 미식가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밥벌이 일테이고 그들 좋아서 하는 일이니. 요리할 시간에 일을 더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요리 전문가가 해주는 요리를 사서 먹는 것이, 요리 관련 사람들에게도 수입창조를 하는 일이니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먹망 프로그램도 본 적이 없다. 맛이 있다는 것까지는 인정하겠는데 그 오도방정스러운 제스처들이 썩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연히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그런 내가 요리를 해본 적이 있다. 랍스터 요리를!! 짜~잔~~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구바씨가 우리도 랍스터를 먹어보자 라며 랍스터 한 박스를 사 왔다. 한국에서는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도 하고 뭔가 사회적 지위(?)를 풍기는 해산물인 것이라서(미국에서는 노예들이 먹기 시작했다고 들었지만ㅜㅜ) BOX로 사 왔지만 흔쾌히 반겼다. 먹어 본 적이 있는 구바씨 설명대로 랍스터를 와인에 넣고 쪘는데 구바씨는 맛이 환상적이라며 엄청 잘 먹었다. 맛은 그냥 뭐 좀 더 쫀뜩한 게살 맛이었다. 아들은 해산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나는 ‘살을 파먹어야 한다는’ 그 말의 뉘앙스와 랍스터 살을 발라내야 하는 그 행동이 영 께름칙해서 환상을 가졌던 랍스터 맛이 전혀 환상적이지 않았다. 몇 마리는 다음에 먹자며 냉동실에 두었는데 생각이 나서 ‘랍스터 요리’를 해보자라는 발랄한 생각이 발동을 걸었다. 그냥 된장 찌개에 두부와 그 쪄놓은 냉동 랍스터를 넣었다. 랍스터 요리가 별거인가 랍스터가 들어가면 랍스터 요리지. 찌게 냄새가 좀 요상하기는 했지만 뭐 된장 찌개에 붉은 랍스터가 들어갔으니 보기는…. 음…보기도 영 이상했다. 된장에 랍스터 집게 발가락이랑 수염이 길게 난 머리까지.. 뭔가 좀 아니었지만 요리는 요리니까. 식탁에 랍스터 된장 찌개 요리가 등장하자 젓가락을 든 구바씨는 허공에서 젓가락 든 손을 멈추고 한참이나 냄비를 들여다보며 말도 멈추었다.
“랍스터 요리 한다고 하지 않았어?”
“랍스터 요리잖아요~ 랍스터 된장 찌개~ 먹어 봐요~ 어떤가.. 내가 근 십 년 만에 한 요리인데~ ㅎㅎ”
“아니! 랍스터를 된장찌개에 넣는 사람이 어딨어?’ 이 비싼 거 얼?”
“ 된장찌개에 게맛살도 넣잖아요? 그게 그거지 뭐? 게다가 랍스터 한 마리 통재로 넣었으니까 고급 요리이구만”
“ 아니! 누가 된장찌개에 게맛살을 넣는뎃? 오뎅도 넣은 것을 못 보았구먼!” 당신 꿈꿨어?”
“ 아이~ 그냥 잡숴봐~~ 속에 들어가면 다 똥이나 된장이나 그게 그거지 뭐… 맛은 괜찮을 거야~ 히히~”
된장찌개 국물을 한번 떠먹은 구바씨는 잠깐 꿀꺽하더니 뭔가 아주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단어를 찾아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무 말없이 이번에는 랍스터 살을 파서 먹어보았다. 거의 껌을 씹는 모습으로 랍스터 살을 씹고 있었다.
“어구.. 차라리 게맛살이나 오뎅을 넣었으면 이렇게 찔기지는 않겠넷! 삶은 랍스터를 부글부글 또 끓였으니 살이 질겨져잖앗! 맛도 확인 안 했엇?”
“아뇨~” “ 나 랍스터 별로라서…”
“허.. 후~ 일단… 냄비에 둘러 나온 거라서 먹기 먹는데….. 당신.. 그냥.. 밥만 전기밥통에 해라. 예술가라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이건 아니짓!..이건 입을 고문시키는 거닷.. 으그…”
그 이후로 구바씨는 더 이상 랍스터를 사 오지 않았고 나 역시 랍스터 요리 기회를 더 이상 가질 수가 없었다. 뭐.. 크게 잘못 된것은 아닌데... 나도 요리할 때 생각이란 것을 하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