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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동생이 남편의 죽음을 나한테 알려주었다.
치통이 있었는데.... 빨리 병원에 가질 않아서... 바이러스가 퍼져서....
수술을 해서 긁어냈는데... 척추까지 퍼져서... 3주 동안 고생하다... 결국은..
구바씨도 눈만 크게 뜰뿐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이놈의 세상 참 무심하다.
한 가정의 가장인 남편이,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사라졌는데 이 무심한 세상은 털끝하나 요동이 없으니 과연 인간은 미물보다 못한 것인가. 전화를 끊고 밥을 먹는데 밥이 평소처럼 잘 넘어갔다. 가까운 지인이 죽었는데 밥이 넘어갔다. 이래도 되는 건지. 다른 것을 몰래 먹고, 슬픔에 넘쳐 차마 밥을 먹을 수 없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망하게 밥이 잘 넘어갔다.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적어도 한 끼라도 못 먹어야 되는 것 아닌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후에도 밥이 넘어걌다.
한국에서 엄마를 3주 동안 병원에서 보고 미국 집으로 돌아온 후 이틀 만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예상은 했지만 시차도 풀리기 전에 돌아가실 줄을 몰랐다. 방망이로 뒤뜰에 서 있던 무고한 나무를 두드리며 울었지만 그날 저녁밥을 잘 먹었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돌아보았다.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차리리 비라도 내렸으면 하늘이 내 마음을 아는구나..라는 어줍지 않은 이유라도 붙여 볼 텐데... 태평양 건너 엄마라는 피붙이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이 벌어진 사실일 뿐 집안의 먼지마저도 바뀐 것이 없었다.
그렇구나!
죽음은 매 순간 일어난다. 라즈니쉬는 숨을 들이마실 때도 숨을 내쉴 때도 죽음은 일어난다고 했다.
죽음은 늘 우리 사는 일상에 함께 있는 거며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안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생리 현상이구나.
그래서 산 사람은 산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것이겠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명도 있다지만 그 생명들 역시 시간이라는 목숨을 살아내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억울하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삶을 좀 더 체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일 수도 있겠다. 매 순간순간 움직이는 삶의 신비와 무한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이라는 열차 안에서 하차했다는 것을 안타까워한 것이리라. 죽음은 바로 고개를 돌리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아끼는 이들의 주검 앞에서 맥이 빠진다.
그 동생은 울지도 않았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목소리였다.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 상황을 어쩔 줄 몰라하며 나에게 이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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