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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Jun 17. 2024

5초 거리에 사는 아들 부부

봐주기로 했다.  

우왕좌왕에 어찌어찌하다 쌍둥이를 낳은 아들 내외를 옆집으로 이사하게 하였다. 하긴 반려견도 제대로 건사를 못하는데 직장 생활하면서 쌍둥이 사내아가들을 어찌 감당할까. 자의 반 타의 반 아들은 5초 거리의 이웃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미국며느리 '레이'가 시집옆으로 오는 것에 동의를 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래서 요즘 젊은 부부의 생활을 근접 거리에서 반 강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일단 집안이 늘 폭격 맞은 것처럼 개판이다 (반려견인 김치는 점잖아서 털을 뿌리며 설렁설렁 돌아다녀도 어지르면서 놀지는 않는다) 물론 부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바쁜 직장생활에 깔끔이라는 상태는 하늘에 별따기라지만 집안은 대부분의 날들이 이사하기 전 날  광경이다.  입었던 옷들은 여기저기 쌓여있고 휴지통은 넘쳐흘러야 겨우 비우고,  개털이 온 사방에 널려있는 것은 이미 초월한 지 오래이고, 설거지도 늘 쌓여야만 시작한다. 빨래는 자주 하는 것 같은데도 빨래통은 늘 만원이다. 식탁에는 takeout 해서 먹은  음식들 찌꺼기가 그대로 있을 때도 있다. 이 개판 안에서 둥이들이 개털 뭍은 간식을 먹고, 개털이 덕지덕지 뭍은 장난감을 가지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면서 놀고 있다.


구바씨는 "아니.. 이 녀석들이 내 귀한 손자 놈들을 돼지우리 안에서 키우고 있잖아! " 라며 옆에 있는 마나님한테만! 씩씩거리신다. 문제는 '청소 좀 해라!' '집안이 이게 뭐냐!' '정리 좀 하고 살아라!' 등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며느리한테는 그런 말이 사생활 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청소를 대신해 주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휴지통이 넘쳐나면 휴지통을 비워주는 것 외에는 아들 집 물건을 함부로 만질 수 없다.  뭐, 집안 청소와 정리를 못하고 사는 것이 상황적인 면과 성격적인 면도 있을 수도 있고  대세(?)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노인네들 심기의 지장을 초래하기는 한다). 희한한 것은 본인들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초 거리에 있는 이 젊은 부부는 자기들 집이 개판인 이유를 "둥이들이 태어나서~~" 라며, 말도 못 하고 심기가 불편한 구바씨 앞에서 그럴듯한 이유를 둘러댄다. 매일이 이사 전 날의 집안 상태이지만 그래도 손님이 오는 날에는 그나마 정리며 청소며 분주하 기는 하다. 그들의 이유처럼 둥이들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냥 뵈주기로 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아들에게 대답을 원해 뭔가를 물어보았을 때는 "레이한테 물어보고요"를 먼저 한다(레이는 며느리 이름이다).  아들에게 "오늘 저녁 엄마가 버섯 파스타를 만들려는데 어때?" 하고 물으면 아들은 "레이한테 불어보고요" 하고 대답한다. 아니... 바쁜 엄마가 저희들 위해서 버섯파스타를 만들어준다는데 그냥 땡큐하고 먹으면 되지 뭘 마누라한테 물어봐?? 돌겠다@@  토종 한국식 청국장을 만들어서 먹으라는 것도 아닌데... "레이가 버섯 파스타 좋데요~" 하면 저녁을 준비한다. 매번 이런 식이다.


뿐만 아니라, 레이에게 '밥 먹었니, 아기들은 어젯밤 어땠니,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슈퍼에 같이 갈까'라는 일상의 평범한 사항이 아닌 이슈는 매번 아들을 통해서 말해야 한다.  언어의 다름은 핑계일 뿐 아들은 일상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모든지 본인에게 먼저 말해주기를 원한다. 혹시라도 사항이 급해 레이에게 말을 했다면 반드시 아들에게 레이와 이러이러한  대화를 했다고 보고(?)를 해야 한다. 내 시대에 대부분의 남편들의 행동은 잘못된 점이 많아서 반드시 고쳐져야 하고 훨씬 개선이 되긴 했지만 요즘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 한 번은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 결혼 조건 중에 하나가 무엇이든지 마누라한테 먼저 이야기하고 마누라 의견을 먼저 물어본다였니?" 했더니, 아들왈 "아니요, 하지만 요즘 우리 또래는 다들 그러는데..." 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한다. 마치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장착된 프로그램 하나를 이야기하듯.  


사실 나는 아들과 일상에서도 많은 대화를 하는 편이다. 한국말을 잊지 않은 마들과는 며느리와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는데 그 점은 참 다행이다.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 한결같이 '우리 아들은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해~ 무조건 며느리 하자는 데로 하라고 해~' 하며 애써 씁쓸한 웃음을 지으려고 한다.  아들 내외가 사는 옆집과의 대화 절차는 좀 불편하지만 근본적으로 마누라를 다른 문화와 시부모로부터 보호하려는 아들의 배려라고 생각하고 그냥 봐주기로 했다.


딸 가진 부모와 아들 가진 부모의 의견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요즘 2-30대 젊은 부부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아들부부가 요즘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부부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 요즘 30대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과 고민등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종합적으로 깨달은 것은 가족 간에도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집안을 개판으로 만드는 것도 그냥 거리를 두고 보아주고 아들이 마누라 의견을 첫 번째로 챙기는 것도 그냥 인정하는 것이 노바의 거리두기 방법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영역과 관계가 있다. 부모세대가 희생했다고 해서, 친밀하다고 해서 이미 성인이 된 자녀들의 개인 영역에 왈가왈부한다면 3대가 모여 사는 가족의 모양새가 나빠지고 꼰대소리나 들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했더라도 그들의 영역을 부모인 우리와 5초 거리 안으로 좁혀준 것은 큰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들 부부가 물리적인 거리를 좁혀준 것에 대한 성의표시로 부모인 우리들은 정신적인 거리를 널널하게 유지해 주려고 한다.  

그냥 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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