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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Jun 10. 2023

무써운 난.득.호.도.

유일하게 구바씨를 제어하는 사자성어

GW브리지에서 뉴욕 북쪽으로 1시간 반 가량  떨어진 곳에 00 사라는 절이 있다. 그곳에 주지 스님이 한국에 유명한 … 사에 주지 스님이시기도 한데 그분 붓글씨가 유명하다. 그분의 붓글씨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작품을 받으러  내 친구 큐레이터 S와 함께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나님 가는 데는 꼭 따라가 주시는(?) 구바씨도 동행을 했다.  주지 스님은 본인의 붓글씨를 전시한다고 하니까 좋기도 하고 게다가 직접 전시 관계자들이 작품을 받으러 와주니까 고마워하셨다. 잠시 각자 소개를 하고 주로 주지 스님의 이런저런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어려서부터... 선생에게 붓글씨를 배웠다는 말씀, 이제 좀 붓글씨를 쓴다라고 생각했는데 늙어서 손이 떨린다는 말씀 등등 하셨다. 전시할 작품이니 직접 써서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여기까지 온 우리들에게 한 붓글씨를 써 주시겠다는 깜짝 선물 선포(?)도 하셨다.


스님께 뭘 써 달라고 할까… 라며 다 잊어버린 사자성어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근사한 한자를 생각하느라 우리 각자는 소리 없는 짱구 굴리기에 끙끙거렸다. 어쨌든 점심을 먹는 동안 S와 구바씨를 비롯한 우리는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흥분으로 스님의 식사가 끝나시기만을 기다렸다. 그 유명한 스님의 친 붓글씨를 현장에서 보고 받다니 이건 가문의 영광이었다. 식사를 끝마치신 스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아셨는지 벌써 족자와 붓글씨 도구들을 챙겨 가지고 오셨다. 우리는 스님 주변으로 둘러앉아 비디오를 돌리기 시작했다. 스님께서 ‘무엇을 써줄까?’라고 하문하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스님은 그 기다림을 요즘 말로 쌩-까시며(?) 계속 먹을 가신 후 손에 든 붓에 힘을 주시면서 손목을 휘두르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스님은 우리들의 흥분에 찬물을 조용히 뿌리셨다.


와우~~ 한 획 한 획이 숨 멈추게 하는 예술이었다.

난. 득. 호. 도. (難得糊塗)

- “난. 득. 호. 도. 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똑똑한 사람은 바보처럼 굴어야 한다…라는 뜻인데…” 여~~  이,  거기  처사님 가지세요.” 

하시면서 구바씨 앞으로 쓰윽 밀어 놓으셨다.  순간, 구바씨를 비롯 나와 S는 입과 눈이 동시에 벌어졌다. 옆에 있던 신도 한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우리의 경악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스님은 그 귀하게 쓰신 ‘난득호도’인지 뭔지를 아티스트는 나인데… 나한테 주셔야지,  구바씨 앞에 쓰윽 밀어주실 수가 있는지...’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S와 나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아~ 이건 거의 신의 한 수다', 아니 신의 계시이다.'라고. 입과 눈을 닫지 못하는 구바씨 역시 나와 S를 번갈아 봐 가며,


- “와.. 이, 이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난, 난… 당신도 알지? S 씨? 알죠? 나… 스님께 한마디도 안 하고 얌전히 앉아 있었는데… 아… 기가 막히다 못해 억울해에~~ 거의 스님 말씀만 들었는데… 허… 참… 이건 완전 대포, 대포 맞은 거네에~~ 하참.."

라며,  혹시라도 스님이 들으실 까봐 말을 꾹꾹 눌러 속삭였다. 주지스님은 그냥 빙그레 웃으시면서 담담히 다음 글씨로 옮겨 가셨다. 고승의 직관력!! 짱!! 짱이다!!! 수련하신 스님의 높은 직관력으로 구바씨의 첫인상으로 그에 삶을 꿰뚫어 보셨다.


난득호도… 이런 말이다. 구굴신에 의하면  ‘난득호도는 '총명하기는 어렵고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어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을 의미하는데, 역설적으로 보면 이렇게 어려운 만큼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실력을 감추고 자신을 낮춰 어리석은 듯 행동하는 사람이 인품이 높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즉 주지 스님은 구바씨한테, 쉬운 말로 ‘풍기는 것으로 충분하니 잘난 척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라… 하는 가르침으로 그 난득호도라는 사자성어를 허심탄회하게 써 주시며 일침을 놓으신 거다. 구바씨 억울해하는 그 마음 좀 이해는 간다만,  빙고!! 히히. 구바씨는 억울한 마음을 접고 자기 인생을 꿰뚫어 보시는 고승의 ‘기’에 매료되어 떯은 마음을 애써 숨기며 난득호도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었다.


도를 닦으신 고승처럼 어떤 사람의 첫인상과 그 사람의 총체적인 삶을 맞추어서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나는 엄두도 못 낸다. 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재주(?)는 가지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그 본인의 삶이 보인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삶이 내 얼굴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지적 호기심이 철철 넘치는 구바씨가 한 설전을 피며 “아 … 그게 아니고… 그건 이런 건데…”라고 시작해서, 그 설전이 길어지려 한다는 것이 감지될 때마다 나는 구바씨에게 눈을 크게 뜨며 “난득호도!!”라고 외친다. 그러면 구바씨는 하려던 잘난 체(?)를 멈칫하며 간략한 설명으로 지적 충만함을 누그러 뜨린다. 때론 아주 부드럽고 공손하게 “아… 저는 잘 모르는데요..”라고 하며 말꼬리를 내린다. 유일하게 구바씨를 제어(?)할 수 있는 난. 득. 호. 도. 는 쥐 죽은 듯이 살아온 내 삶과 전혀 무관하게 그렇게 뒤늦게 우리 집 가훈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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