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LONE

2016년 12월, 서른을 돌아보며

by 노바써니

서른. 2016년에 나는 30대를 맞고야 말았다.

어릴 때는 종종 어른들로부터 생활력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막상 성인이 되고 나니 그런 이야기는 사라지고 각자가 얼마나 벌고

얼마를 쓰고 사는지 눈치게임을 하는 현실에 놓이게 된 것 같다.


좀 더 먼 미래에 발을 들여놓을 줄 알았던 서른의 첫 달 가계부를 정리해보니

한 달 동안 식비로 쓴 금액이 179,430원 밖에 되지 않았다.

31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5,790원 정도를 쓴 셈이다.

최저시급이 6,030원인 시대에 하루에 세 끼를 전부 해결하는데 시급만큼도 못 쓴 셈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먹고살면 하루 식비가 최저시급만큼도 되지 않을까?'

나는 내가 걱정되기 시작했고, 그런 생각에서 평소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샛노란 패키지가 눈에 띄는 3분 요리부터 각종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인스턴트, 가공식품을 먹고 있는 나를 점점 깨달아갔다.

매주 마트에 갈 때마다 채소값은 시시각각 올라 고민 끝에 결국 손에서 내려놓기 바빴고,

카트에는 또다시 세일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가공식품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24살 때쯤, 선배들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서른 되면 집도 차도 다 있을 것 같지? 똑같아, 아무것도 없어."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며 흘려들었던 그 말 그대로 서른을 맞이하고 서른을 살고 있다.

나는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20대의 끝무렵에 건강악화로 몇 달 밖에 다니지 않았던 회사를 정리하고

서른의 시작과 더불어 다시금 프리랜서로 돌아왔다.

서울보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지방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타인에게 내 직업을 설명하는 게 녹록치는 않았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동안, 통장잔고는 줄어만 가고 결국 나의 하루 세 끼는

계속해서 인스턴트와 가공식품으로 가득 차고 몸도 계속해서 아프기만 했다.



지겹도록 '버텨라'라는 말을 들으며 그 말에 신물이 나고 막막함만 더해갈 때쯤,

그동안 '내가 무엇을 먹었는가?'라는 물음의 결과로 나온 그림들을 가지고

내 인생의 첫 개인전을 자그맣게 가지게 되었다.

오프닝 파티에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그림을 보았다는 인증샷과 소식들이 들려왔다.

너무나 감사한 순간들이었다.


그러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예고도 없이, 5년 만에 일러스트레이션 의뢰 작업이 들어왔다.

지겹도록 먹었던 라면을 그린 그림을 본 클라이언트의 전화였다.

아직 나를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 소개할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의뢰였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마트에 가면 유통기한 마감임박 세일 스티커가 붙은 가공식품부터 찾는다.

올봄에는 한 달 식비로 136,680원 밖에 쓰지 않는 신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괜한 마음에 구직 사이트를 뒤지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녹록치 않지만, 어떤 것이 버티는 것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지만

2016년 12월 1일 현재, 나는 서른을 잘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올해 남은 이 한 달도 소중하게 살아내리라. 그렇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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